착하다는 말이 욕이라고 생각해온 지 아주 오래되었다. 학창 시절 반에는 꼭 한 명씩 ‘착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어쩜 얼굴도 그렇게 착하고 순하게 생겼었는지!) 나는 그런 친구들과 친하게 지낸 적이 없다. 참 착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친해지지는 않았다. 착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더더욱 없다. 친구와 적을 막론하고 싸가지 없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어쨌든 착하다는 말은 욕이니 꿀릴 것도 없었다.
나이를 먹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착하다는 것이 소중하고 귀한 가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톡 쏘고 자극적인 재미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웃기고 말이 세고 성격도 세고 지기 싫어하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로만 가득 찬 세상은 상상도 하기 싫다. 학교에서 만난 수많은 착한 친구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던 과거가 진심으로 후회되었다. 이래서 사람은 인성이 중요하다.
지금 나에게 너무 소중한 ‘착한’ 동료들과 학창시절 같은 반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쟤는 참 착하네’하고 대충 지나쳐 웃기고 성격 나쁜 내 친구들에게 다시 돌아갔을 것이다. 백프로다. 강산이 두 번은 족히 바뀐 뒤에야 선량하고 친절한 사람들하고 어떻게든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어서 비비적대는 스스로가 환멸난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살아온 덕분에 그들 옆에 간신히 붙어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만난 착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정확히 세 사람을 떠올리며 쓴다. (피터1, 피터2, 피터3 같다.) ‘착하다’는 것은 마음씨와 행동이 곱고 어질다는 뜻이라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들은 ‘곱고 어질다’기보다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고집이 세고 강인한 사람들이다. nice, kind, friendly처럼 어감과 속뜻과 용법을 잘 모르겠는, 모국어가 아닌 말들로 설명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다. (’착하다’는 단어를 셀프 오염 시켜온 세월이 너무 길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싸가지 없음의 대가는 이렇게나 크다. 그걸 알면서도 이를 악물고 ‘다정하다’는 말을 쓰기 싫어서 버둥대고 있다. 당연히 그 말도 너무 싫기 때문에.)
어쨌든 그들은 너무 고집이 세서 계속해서 사람을 믿는다. 아무리 싫은 사람에게도 웃으며 잘해준다. 그래서 보는 사람, 특히 나 같은 사람의 복장을 터지게 한다. 나는 그 사람이 너무 싫은데 왜 매번 당하면서도 다시 잘해주느냐고 따지지도 못한다. 못난 모습을 보이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미움 받기 싫으니까. 누가 나를 미워하든 말든, 심지어 누가 나를 싫어한다고 하면 푸하하 웃고 싫어할 이유를 백 개쯤 더 만들어주고 싶어하지만 그들에게 미움 받으면 그건 정말 인간 실격이라는 뜻일 거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이 햇살이었듯 그들 앞에서는 되든 안 되든 착한 척이라도 하게 된다.
척은 척에 불과해서 속으로는 대체 왜 자꾸 그런 놈에게 기회를 주고 웃어주는 거냐고 한참을 툴툴댄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면, 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으며 결국 내가 또 졌다는 것을 인정하고야 만다. 언제나 그들이 맞고 나는 틀렸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아무리 별로인 사람에게도 친절한 이웃이 되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도무지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나 역시도 이 길고 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좋든 싫든 ‘여러분의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 레터(링크)에서 친절과 환대의 아이콘으로 스파이더맨을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에 개봉한 새로운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생 전체가 무너져 내려도 웹스윙을 멈추지 않는 것, 차에 치이고 맞고 뒹굴어도 농담을 잊지 않는 것, 어린이에게는 손을 흔들어주는 것. 의무감에 꾸역꾸역하는 출근과 노역이 아니라 성품에서 배어나는 친절을 행하는 것. 그것은 내가 아는 세 사람의 행동 양식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은 뉴욕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언제나 그 세 사람을 떠올릴 때 막막함을 느낀다.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어서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면서 그렇게 착하고 친절하고 강한 사람이 되었는지, 노력의 결과인지 타고난 성격인지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모르지만 관심만은 많아서 막막함을 느끼면서도 그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아마 필연적으로 외로우리라, 건방진 추측도 일삼는다. 아무리 고집이 세고 강하고 선량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믿음이 계속 어긋나고 사람에게 배신 당하는 경험이 쌓이면 슬프고 외로울 것이다. 피터 파커도 그 세 사람도 결국에는 인간이니까.
스파이더맨은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돈도 없다. 스파이더맨에게 없는 여러 가지 요소 중 대다수는 그가 슈퍼히어로라서 빼앗긴 것에 가깝다. if는 대체로 쓸모없고 잘하지도 못하지만 억지 상상을 해보자면,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안락하고 따뜻하고 평온하게 살았을 테니까. 게다가 아무리 봐도 힘에 비해 과하게 커 보이는 책임은 어깨 위에 얹혀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스파이더맨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마음 아파하고, 응원하고,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나의 착한 친구들을 사랑하는 이유도 같다. 가끔은 외롭고 쓸쓸하고 주는 만큼 받지 못해도 그들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믿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한다.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친절을 베풀 때마다 똑같은 크기의 보답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그것에 이렇게 큰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선량한 마음씨와 친절과 침착함은 빛난다.
나는 언제나 스파이더맨을 응원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가끔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어보기도 한다. 이것이 스파이더맨의 마음일까 생각하며. 그보다 자주 이럴 때 그들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떠올린다. 그러면 최소한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 더 착한 사람인 척 살아갈 수 있다. 타고난 성품은 그렇지 않더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세 사람이 삶으로 직접 가르쳐준 슈퍼히어로의 보법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내가 운전하는 차 지붕에 스파이더맨이 착지한다면 때를 놓치지 않고 풀악셀을 밟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