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사람들은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동시에 생각보다 관심이 많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라면 “이제 머리 기르기로 한 거야?” “머리 엄청 많이 길었네!” 다. 살 빠졌다, 살쪘다처럼, 밥 먹었어? 잘 지냈어?처럼 안부를 묻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에 심경의 변화를 묻는 질문이 따라붙으면 그때부터 귀찮아진다. 예전에는 갑자기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에게 실연의 딱지를 붙이는 일이 흔했지만 갑자기 머리가 길어지기 시작한 여자에게는 - 그래봐야 귀 밑 3cm 수준이지만 - 무슨 딱지를 붙여야 할지 아직 합의된 바 없으니 본인에게 직접 묻는 수밖에 없기는 할 것이다.
기억을 되새겨보면 - 절대 기억이 안 나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뒤져보고 왔다 - 나의 탈코르셋은 약 7년 전 시작되었다. 화장을 안 하는 게 먼저였는지 뒷머리를 빡빡 깎는 게 먼저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시작한 이후로도 몇 번쯤은 단발 가까이 머리가 길었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화장을 하기도 했으니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잘 기억나지 않는 마당에 그때의 이유만큼은 매우 명확하게 기억한다.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초등학생, 중학생 여자아이들이 화장을 하지 않은 ‘쌩얼’을 드러내기 힘들어한다는 기사를 읽고 느낀 죄책감이었다. 화장품을 살 수 없거나 미처 챙겨오지 못한 날에는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아이라인을 그리고 형광펜으로 입술을 칠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아이가 없고 그때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은 있다. 긴 머리를 유지하고,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굽 높은 신발을 신는,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범죄처럼 느껴졌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꼬마들이 ‘저 언니 예쁘다’라고 하면 느꼈던 뿌듯함을 뇌에서 끄집어내고 싶었다.
내가 탈코를 한다고 TV에 나오는 아이돌의 영향력이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저 사람은 남자야 여자야? 여자인데 머리가 짧아? 이상해! 의 대상으로서라도 존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시화의 필요성보다 개인적인 충격과 죄책감을 훨씬 크게 느꼈다. 그래서 탈코를 조금 더 큰 운동의 일부로 생각하지 못했고, 결국 그 때문에 7년 뒤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역시 이론과 실천의 양 날개는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두 번째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었다. 서른이 될락말락, 일한 지 5년이 넘었을 때라 그때 나는 어느 때보다도 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만큼 예민하고 까탈스러웠는데, 지금 내 앞에 앉은 상대가 나를 (기특한 혹은 야무진) 어린 여자로 보는지 한 사람의 동료로 보는지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는 뜻이다.
거기에 몇 가지 사건도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팀원이 ‘팀장인 나에게’ 둘이 술 한 잔 더 하자고 했을 때 ‘야마가 돈다’는 말의 뜻을 정확하게 배웠다. 같은 회의실 안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남자 직원들은 ‘디폴트’의 모습으로 앉아 있고 여자 직원들은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얼굴에 색을 칠하고, 손톱에도 색을 칠하고,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앉아 있다는 게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너희에게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자’로 보일 수 밖에 없는 행동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화장품에 달린 조그만 손거울을 보고, 밥을 먹은 뒤 입술에 화장품을 바르는 행동들을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때 남자 동료들에게 나는 ‘여자’가 아니라 ‘약간 이상한 여자’… 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 이상한 여자’를 fuckable하게 보지는 않았을 테니 절반의 성공 아니었을지.
어쨌든 그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여자 투블럭을 절대 안 해준다는 미용실도 많았고, 어디를 갈 때마다 (주로 어린 아이들의) 저 사람 남자야 여자야? 소리를 듣고는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한결 편해졌다. 요즘에는 웬만한 곳에서 머리가 짧은 젊은 여성을 흔히 볼 수 있고, 하이힐이라는 존재, ‘개강여신’ 같은 단어, 기타 지금은 까맣게 잊어버린 수많은 과거의 코르셋들이 있다. 그냥 이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되었다.
물론 이건 나만의 이야기이고 탈코의 물결이 넘실댔을 때 나보다 어린 여성들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를 욕하는 학교 사람들, 조롱들, 취직에 불이익이 있다는 소문들, 유행과 외모에 더 민감한 친구들, … 하지만 이미 직장인이었던 나는 최소한 면전에서는 ‘너 페미야?’하는 질문조차 들어본 적이 없으니 제법 편안했던 셈이다. 아니 오히려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어쨌든 나는 점차 편안해지면서도 혼란스러웠다. 한번은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해외 여행을 갔는데, 탈코의 한가운데에 있던 시기였으나 나도 모르게 여행지에서 화장을 했다. 최면이라도 걸렸었다는 거냐고 하겠지만 정말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랬을까? 당시의 혼란을 기록했던 내용을 덧붙여둔다.
솔직히 이번 여행 얘기를 하면서 탈코 이야기 안 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다 하기에는 너무 길어져서… 나중에 기회되면 하기로 하고 그냥 간단히만 기록해둔다. 작년 2-3월부터 화장을 하지 않게 되었고 4월경 머리를 짧게 잘랐다(깎았다에 가깝게). 그런데 다낭에서 하루 화장을 했다. 화장품을 챙길 때부터 여행지에서 그걸 얼굴에 바를 때, 적응 안 되는 답답한 느낌에 괴로워하면서도 내내 궁금했다. 뭐가 궁금했냐면 내 기분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던 것…
대체 여기서는 왜 화장을 하는가? 사진을 많이 찍고 싶어서? 그럼 사진 찍을 때는 코르셋을 조여야 하는 것인가? 등등 그동안은 솔직히 이 상태가 너~~~무 편해서 별로 이게 ‘운동’이라는 자각도 없고 어려움도 못 느꼈는데 나도 모르겠는 나의 어떤 (만들어진?) 욕구랑 부딪치는 순간이 이 여행에서 옴.
(2020. 01. 22.)
지금은 그냥 머리가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둔다. 미용실 원장님이 우리 같이(?) 조금만 머리를 길러보자고 해도 그러자고 한다. 몸에 딱 맞는 티셔츠도 그냥 입고 가느다란 끈이 달린 ‘여성용’ 샌들도 그냥 신는다. 누군가 ‘톤업’ 선크림을 주면 바르고, 선물 받은 립밤에 컬러가 있어도 쓴다.
그렇다고 이런 내 모습이 머리를 빡빡 깎은 탈코야끼 시절보다 만족스럽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제는 6년 전 경험했던 나의 ‘만들어진’ 욕구가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의 귀신같은 캐치를 보며 아직은 그만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렇게 안이해진 데도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지쳤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늙었기 때문이다.
지쳤다. 내 몸과 외모가 싸움터가 되는, 나 혼자 싸우는 곳이기도 하고 사회와 내가 싸우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들이 애인이 가족이 입을 대는 곳이기도 한 상황이 언제나 매우 피곤하다. 예전에는 여성의 몸, 외모만 이런 싸움을 겪어야 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이제 나는 은퇴해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이제 그 정도로는 늙었다 싶으니까. 이게 두 번째 이유다.
물론 나는 아직 젊지만 지나가던 꼬마가 ‘저 언니 예쁘다!’고 할 만큼 젊지는 않다. 이제 나와 일 이야기로 마주 앉는 사람들이 나의 외모보다 나의 의견에 더 집중할 만큼의 경력을 쌓아왔다. (문득 떠오르는 추억: 한참 탈코 담론이 퍼져나갈 때 강경화나 리사 수 같은 여성들의 사진이 수도 없이 제시되고는 했었던… 하지만 그 생각은 썩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던…) 또 이제는 fuckable과 available의 잣대로 평가 받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결혼 적령기’가 지난 나이가 된다는 것에는 이런 장점도 있다.
모든 생각이 정리된 것은 아니고 아직도 고민 중이다. 최근 새삼스럽게도 가부장제는 정말 힘이 세다… 는 것을 느끼고 있다. 바뀌었나 싶으면 돌아오고 해치웠나? 하면 어림 없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나 하나 낡고 지쳤다고 포기하는 건 안 될 말인 것 같다. 너 정말 최선을 다했니? 라는 내 마음 속 문근영의 질문이 머리를 울리는 것이다. 이렇게 한 걸음씩 후퇴하다가는 ‘긴 머리가 짧은 머리보다 유지하기 편하다’ ‘꾸밀 자유를 억압하지 마라’ 뭐 이런 이야기까지 가는 것은 순식간일 테다. 가부장제는 힘이 세니까.
아무튼 마음의 결론 없이 행동하기가 아직도 어려운 사람이기에 잠정적인 결론을 내기는 했다. 인생은 길고 지금은 너무 바쁘고 힘든 시기이니 일단 아무렇게나 산다. 그리고 조금 정신이 차려질 - 것으로 예상되는 - 때, 아마 겨울쯤부터 다시 한번 고민한다. 머리 길이 같은 걸로, 고작 외모로 그렇게 고민해야 하냐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