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이란 정말 신기하다. 대략 저 놈이 임신할 때가 됐는데? 싶으면 본인 혹은 남편 혹은 주위 친지 누군가가 ‘태몽’이라는 꿈을 꾼다. 각종 동물이나 과일, 귀금속이나 식물 같은 것들이 탐스러운 모습으로 꿈에 등장하고 그 꿈을 새로운 아기의 탄생과 연관 짓는 일은 어떤 태몽을 꾸면 어떤 아이가 태어난다는 구체적인 미신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신기한 일이다.
요즘에는 이런 집단 무의식이 다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깊은 소망이 만들어내는 많은 이야기들, 함께 모여 그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렇게 태어난 또 다른 구성원을 축복하고 받아들이는 일들이 사실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접했던, 이후 <기억 전달자>라는 제목으로 다시 소개된 소설에서 인류는 이런 집단 무의식을 잃기로 결정한다. 이제 더는 ‘집단’ 무의식이 아닌 그 기억들은 선택 받은 아이 단 한 사람에게만 전해지는데, 이런 비효율과 위험을 견디면서까지 무의식과 기억들을 지키려는 이유는 역시 그것들이 사랑스럽고 소중하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한다.
다시 태몽으로 돌아가서, 내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아주 특이한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어느 철조망 옆을 걷고 있는데(38선 아님 주의) 그 울타리 위를 따라 걷는 검은 고양이가 있기에 손을 내밀었더니 고양이가 자기 손가락을 물어서 꿈에서 깼다고. 그런데 심심풀이 삼아 잡지에 실린 태몽 해설을 읽다가 발견하고 말았다. 구체적이기도 하지, ‘검은 고양이에게 물리는 꿈’이 항목에 있었던 것이다. 높은 관직에 오를 꿈이라는데 아직 높은 관직에 오를 길은 요원해 보이지만 백 세 시대에 갈 길이 많이 남았으니 한번 기대해보기로 한다.
나의 태몽은 할머니가 꿔준 것과 엄마가 꾼 것 두 개가 있다. 할머니는 향기로운 꽃밭에서 한아름 양귀비 꽃을 안고 있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 이 꿈은 며느리의 임신 소식과 태몽 소식을 동시에 듣고 나서 무의식이 작동해버린 그런 가짜 태몽이 아닐까 싶다. 나도 우리 손주의 태몽을 꾸고 싶다는…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가 실감나게 설명해준 태몽 속 풍경은 매우 아름다워서 이런 가짜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꾼 나의 태몽은 용이었다. 사람들이 전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기에 자기도 하늘을 쳐다봤는데 누런 용이 꿈틀대고 있었다고 한다. 옆 사람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용이라고 알려줬다는데, 아무래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 깨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아니나 다를까 꿈 해설을 찾아보니 태몽 중에서도 용인 걸 알아보지 못한 용 꿈은 인생에 좌절이 많고 타고난 재주에 비해 크게 되기 힘든 자식이 태어날 꿈이라고 한다.
엄마는 내가 하고 싶어했던 것들, 그중에서도 ‘밝은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것들, 예를 들면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파이널 인강까지 거침없이 긁을 수 있는 카드 등을 해주지 못할 때마다 이 꿈이 마음에 걸리지 않았을까. 후회 없고 뒤끝 없기로 독보적인 사람이지만 아주아주 가끔씩은 ‘그런 놈들도 유학을 다녀왔다고 잘난척을 하는데’, ‘그때 돈 조금 더 주고 큰 학원에 갔으면 그런 고생은 안 했을 텐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 그럴 것 같다는 이야기다.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냥 나이가 들면서 회한이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이제 와서 태몽 같은 게 무슨 상관일까. 백말띠에 용 꿈 꾸고 태어난 손녀라 할머니는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조금 하셨겠지만, 그런 할머니도 이미 돌아가셨다. 그때 밤하늘에서 꿈틀거리던 용은 태어나기 싫어서 디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기를, 그래서 태어나지 않아도 되기를…
나는 아이를 낳을 일이 없을 테고 그래서 태몽을 꿀 일도 없겠으니 이미 태어나버린 나와 친구들의 태몽 이야기를 하면서 시시덕거려도 좋지 않을까.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이 꾸는 태몽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다시 찾아보니 대부분의 용 꿈은 아들을 상징하지만 밤하늘의 용은 딸을 암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딸은 결혼을 하면 아들보다 더 귀한 딸자식이 될 징조”… 이 해몽을 엄마가 모르게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효도 중 하나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