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체코로 12일 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살면서 두 번째로 길게 다녀온 여행이다. 가장 길었던 여행은 거의 10년 전의, 2주가 조금 넘는 (출장의 탈을 쓴) 유럽 여행이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곳곳의 미술관과 건축물을 돌아본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엄마와 둘이 떠난 이번 여행의 컨셉은 휴식과 효도… 절대 양립할 수 없는 두 단어를 애써 외면했다.
엄마랑 둘이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면 다들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부디 싸우지 말고 돌아와라, 고생이 많겠다 등의 덕담을 건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싸우지 않았고, 고생은 좀 했다. 하지만 떠나기 전의 속 터짐에 비하면 여행지에서의 고생은 고생도 아니었다. 원래는 혼자 가기로 한 여행이었는데 엄마가 자꾸 나도 갈까? 말까? 갈까? 가지 말까?를 반복하며 복장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왠지 미안한 마음에 내가 적극적으로 같아 가자고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 싸가지는 이럴 때 고분고분한 싸가지가 못 된다. 끝까지 나의 솔직한 마음,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를 고수했다. 진심이었다. 엄마가 같이 가도 재미가 있을 것이고, 안가면 혼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여행 경비도 덜 들어 이득일 것이다. 그러니 본인에게 선택하라는 거였는데 번복이 계속되자 정말 머리 끝까지 열이 받았다. 하지만 끝까지 화내지 않은 나 자신에게 건배.
떠나기로 결정한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돈 쓰면서 노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쉽다. 도시마다 숙소를 예약하고 꼭 보고 싶은 공연들-프라하 국립오페라 <탄호이저>, 재즈 클럽 공연, 빈 필하모닉 협연, 미라벨 마블 홀의 모차르트 연주-을 예매하고 남은 시간은 미술관과 술집 위주로 일정을 짰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든든한 마음으로 프라하 공항에 내렸다. 평온하게 다녀온 척 했지만 사실 여기서 한번 화를 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 어떤 버스를 탈지 보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저거 아냐? 하면서 냅다 올라타려고 한 것이다. 탄 거나 다름없다 이미 한 발과 캐리어는 들어갔으니까… 정말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서 아 그거 아니라고! 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막 도착한 뒤라 로밍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도 안 했고, 영어도 단 한 마디도 못하는데 그냥 슝 떠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대사관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상상이고 웬만하면 내가 뛰어가서 버스 뒤꽁무니 팍팍 침, 엄마는 엄마대로 “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었겠지. 대체 무슨 근거로 그 버스라고 확신한 건지 모르겠다.
이후로는 제발 나를 잘 따라다니라고 하고 평화로운 여행을 진행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정말 모든 것을 내가 하는 게 미안했는지 자꾸 본인이 뭔가를 찾아보려고 하고 추리하려고 해서 자꾸 말려야 했다. ‘틀린 정보 그만’ ‘가짜 뉴스 아웃’ 이 말을 제법 자주 했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 쓰면 쓸수록 미화됐던 기억이 실체를 찾아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와 엄마는 누구와 어떤 여행을 가서도 싸우지 않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엄마가 누구랑 싸웠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그 흔한 부부 싸움도 본 적이 없는데, 이건 전적으로 엄마의 성격 때문이다. 만약 나였다면… 아무튼 나도 크게 모나지 않은(?) 교우 관계를 유지했고(??) 이 정도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환상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