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물건을 사는 일에 관심도 취미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지금 찾아보니 벌써 3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링크). 평생의 생활 방식이 순식간에 바뀔 리는 없으니 최근까지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부터 뭔가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막 심장이 뛰었다.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좀 산뜻하게 살아보고 싶지 않아?'그때부터 '생활잡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어떤 걸 샀는지 품목들을 하나하나 말하려니 좀 부끄럽다. 왜냐하면 정말 별 것도 아니라서. 우선 새 쓰레기통을 샀다. 2018년에 독립하면서 샀던 쓰레기통은 10리터 종량제봉투를 꽉 채우지도 못할 만큼 작고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뚜껑을 들어서 열어야 하는 아주 귀찮은 물건이었다. 그걸 귀찮은 줄도 모르고 8년을 썼네. 이번엔 아주 튼튼하고 10리터 종량제봉투가 딱 맞고 발판을 누르면 뚜껑이 자동으로 열리고 사각형이기까지(맞다, 지난 쓰레기통은 심지어 원형이었다) 한 녀석으로 골랐다. 쓰기 편한 쓰레기통을 샀더니 삶의 질이 올라간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나 혹시 지금까지 미련하게 살고 있었던 건가?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음 아이템을 구매했다. 이건 진짜 창피한데... 바로 물티슈다. 휴지, 걸레, 행주, 키친타올이 있는데 물티슈를 왜 써야 하는지 몰랐던 사람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통 색깔조차 산뜻한 초록인 주방용 물티슈를 사보니 눈물이 나올 만큼 편했다. 일회용품 쓰레기를 잔뜩 만들어내겠구나 하는 죄책감은 쏙 들어갔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내친 김에 5년 넘게 나를 먹여 살린 에어프라이어도 바꿨다. 친구가 선물해준 바스켓형이었는데 이 녀석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3kg은 덜 나가는 멸치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 자주 써서인지 골골대는 에어프라이어와 토스터를 한번에 내다 버리고 여러 기능이 합쳐진 귀여운 오븐형으로 다시 샀다. 작은 유리창이 있고 안쪽에 불빛도 나와서 음식이 구워지는 게 보인다. 이쯤 되니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삶의 질이라는 것이 이렇게 손쉽게, 얼마 간의 돈을 내고 '딸깍'으로 물건을 구매하면 높아질 수 있는 거였다고? 나를 둘러싼 공간을 산뜻하게 만드는 게 그냥 돈으로 하면 되는 거였다고? 혹시 이게 바로 '쇼핑의 기쁨'이라는 것일까?
속옷을 세트로 와장창 사서 한번에 교체하고(지금까지는 1개 버리면 1개 샀음) 귀여운 오븐 장갑도 사고(수건과 행주라는 천 쪼가리들이 이렇게 많은데 굳이? 라고 생각했음) 갖고 싶었던 종이책도 몇 권 사고(종이책 그만 사기 운동을 시작한 지 10년쯤 되어감) 고등학생 때 엄마가 사준 니트랑 똑같이 생긴 녀석을 발견해서 옷도 바꿔줬다. 이사를 한 것도 아닌데 기분만은 다른 곳에서 살게 된 것 같은 수준으로 새롭다.
사실 아직도 살 게 많다. 딱 하나 있는 벨트는 고정 끈이 떨어졌고(바지가 흘러내리지는 않아서 그냥 쓰는 중) 13년 된 아이패드는 옛날옛적에 iOS 업데이트 지원이 끝나서 되는 앱이 없으며(유튜브 앱도 안 돼서 사파리로 접속해야 됨) 집에 와이파이 설치를 아직도 안 했다(핫스팟 30기가로 연명함). 산 지 10년 넘은 옷을 한번에 내다 버린다면 내일부터 벗고 다녀야 될지도 모른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아직 죽을 때는 아닌지 이것들까지 다 바꿔주기에는 기력과 의지가 부족하다. 언젠가 다시 쇼핑의 시즌이 돌아오면 그때 사주기로 한다.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는 일에 대한 죄책감은 어디서 온 걸까?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있던 느낌이다. 돈을 쓰는 건 괜찮지만 '물건을 사는' 건 안 된다는 기분.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이기만 해도 어딘지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 부득이하게 사게 된 물건은 정말 죽을 때까지 쓰고 버려야 한다는 의무감. 아직 이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아직 밑창이 뚫리지 않은, 하지만 뒤꿈치 쪽이 해진 컨버스와 허벅지 부분이 닳아 구멍이 나기 시작한 청바지를 버리는 일에는 실패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가진 좋은 것들, 귀엽고 반짝거리고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어서 행복한 물건들은 다 남들이 선물해준 것이다. 덕분에 일상이 뻑뻑하지도 크게 불편하지도 않아서 쇼핑 포비아의 마음으로 고집 부리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남에게 의존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멋진 친구, 동료, 가족이 되려면 혼자만 고고하게 혹은 고집스럽게 버텨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얼마나 타협하고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 당연히 한번에 답을 내놓을 수 없다. 밀고 당기면서 전진했다 후퇴하면서 적당한 선을 찾겠지.
이런 생각을 한참 하다보면 참 어렵게도 산다 싶은데, 어차피 나랑 평생 살아야 하는 거 이 난이도에 적응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싶다. 최고의 나를 누리려면 최악일 때의 나도 견뎌야 한다고 하던데 이 말은 사실 타인에게 할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들려줘야 할 대사다. 지금까지 쌓아온 소비와 물건과 인생이 이미 이만큼이나 있고, 몇 가지 낡은 물건을 버릴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여기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옷가지와 생활가전과 잡화 들을 사고 또 버리고 교체하면서 이걸로 인생이 바뀐다고 할 수 있을지, 테세우스의 배 따위를 잠시 떠올렸다 다시 걸어나가야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