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가 없네… 쓸 얘기가 없네… 하면서 미친놈처럼 중얼대다 문득 생각했다. 그럼 안 쓰면 되는 거 아닌가?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데 왜 혼자 이러고 있나. 원인은 당연히 내 안에 있다. 이렇게 말하기도 머쓱할 만큼 내 안에만 있다. 사실 간단하다. 쓰지 않으면 쓰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쓰면 쓰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쓰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20대 후반 이후로 한 적 없다. 그때 대충 적어둔 답이 30살에 처음 독립을 하고 혼자 살게 되면서 (아직은) 정답인 것으로 밝혀졌다. 내가 살고 싶은 방식,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내가 어떤 때 행복하고 또 어떤 때 평화로운지 대충 다 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은 쓰는 삶을 살아야 가질 수 있다.
(문학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쓰겠다는 것은 매일 돌아보겠다는 뜻이다. 나눴던 대화, 했던 생각, 보았던 것들을 돌아보고 다시 생각하고 적어보겠다는 뜻이다. 막상 적고 나면 그 단어들의 합은 내 생각하고 한참을 다른 모습인데, 다르다고 해서 그게 내 생각이 아닌 건 아니다. 오히려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보면 웃기다. 그리고 그 간극이 진짜 쓰는 이유. 어떻게 보면 지독한 자기애다. 스스로를 보면서 웃겨하고 재밌어하고 그렇게 혼자서 잘 노는 거.
그렇다고 막 나를 잘 알게 되고 현자가 되고 그런 건 아니다. 누군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고 하던데 잘 모르겠다. 쓰면 쓸수록 ‘진짜 나’라는 것과 멀어지는 기분만 든다. 어떤 경험을 하는 나, 그 경험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는 나, 그리고 글로 옮겨진 나(의 생각). 이것들을 일치 시키고 한데 꿰어내는 것이 글이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뭘까? 진짜 나 혼자만을 위한 끝도 없는 독백을 생산하기?
어릴 때부터 그랬다. 뭔가를 계속 생각하고 계속 썼다. 처음엔 학교 친구들하고 선생님을 관찰해서 쓰다가 나중에는 망상에 빠졌다가 결국에는 내 생각으로 끝나는 글자들을 끝도 없이. 그때 썼던 노트가 어쩌다 발굴되면 깜짝 놀란다. 이 새끼 공부한다고 산 스케줄러에 헛소리를 많이도 써놨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쓰는 삶’은 어린 시절부터의 취미를 풍성하게 누리는 삶이다. 하던 짓 계속 하면서 살겠다는 거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환경이 변하면서 예전처럼 살려면 예전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될 뿐이다. 어릴 땐 교실이나 자습실 책상에 들러붙어서 뭔가를 끄적이고 있으면 다 공부하는 줄 알고 넘어갔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쓰는 데 시간을 쓰는 것도 가능했다는 뜻이다. (두 ‘쓰다’가 모두 ‘쓰다’인 것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 집 책상 앞에 앉는 데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의지가 필요했다. 회사에 갔다가 퇴근했고,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고, 저녁을 차려 먹은 뒤 집 정리와 설거지를 하고 씻고 빨래를 널고 여행 갈 짐을 싸고 녹초가 되어 침대에 잠깐 누웠다. 여기에서 사르르 잠들지 않고 몸을 일으킨 것이다. 쓰겠다고.
취미 생활, 그러니까 저 좋자고 하는 활동이라고 말해놓고 또 바로 엄살 부리니까 어이없다. 나는 작가들이 마감에 대해, 쓰기의 고통에 대해 울부짖을 때마다 가소롭다고 생각했다. 너만 힘드냐? 너만 일하냐? 직장인처럼 꼬박꼬박 써봐라 그게 지금까지 밀려있나. 하지만 역시 내 일이 되니 엄살을 부리고 싶다. 나도 이런데 진짜 생계가 걸린 작가들은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겠지. 앞으로는 조금 더 너그럽게 그들을 바라보리라. (하지만 이 짤은 꼭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