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책 읽기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지루하고 평범하지만 어쩔 수 없다. 특기가 뭐냐고 물으면 뭐라 할까. 한때는 술 마시기가 특기였지만 이젠 아니다. 생각해보니 내 특기는 잠 자기다. 남들보다 쉽게 많이 잘 할 수 있는 활동이니 확실히 특기 맞다.
나의 잠 활동은 이렇다. 주말이나 연휴에 아무도 안 깨우면 내리 13~15시간을 잘 수 있다. 밤 12시에 잠들면 다음날 오후 3시에 일어나고, 새벽 2시에 잠들면 다음날 오후 4시에 일어난다. 보통은 할 일이나 약속이 있어서 저것보단 일찍 일어나지만, 그러려면 잠들기 전 꼭 알람을 맞추어야 한다. 그냥 두면 오후 4시쯤이 되어야 이제야 좀 잔 것 같네 하면서 일어난다. 거기에 낮잠도 더 잘 수 있다. 저녁 7시 정도에 살짝 졸리면 한두 시간 더 잔다. 그리고 밤에 또 잔다. 또 잠이 오냐고들 묻지만 너무 잘 온다. 쏘 이지.
회사에 가야 하는 평일에는 9~10시간 정도 잔다.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잠들고 다음날 8~9시 사이에 일어난다. 알람은 7시 45분에 맞춰져 있기는 한데 그냥 요식행위다. 수면 시간, 그러니까 양적 측면에서는 이렇고 질적 측면에서도 남다르다.
어디에 가도, 어디에 누워도 바로 쿨… 에 빠질 수 있다. 친구들하고 여행을 갔는데 이불 위에 누운 채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내가 대답을 안 했다고 한다. 3초 만에 잠들기 쏘 이지. 잘 때 심하게 뒤척인다거나 다음날 일어나보니 침대 위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신기하다. 나는 대체로 잠든 자세와 위치 그대로 깨어나기 때문이다. (180도가 아니라 360도를 돌아서 제자리로 온 것일까?)
어릴 때는 이게 훨씬 심해서 잠에 든 줄도 몰랐는데 눈을 한번 깜빡 하니까 그대로 아침이 되어 있었던 적도 많다. 엄마랑 같이 살 땐 밤 12시에 잠든 애가 아침 9시, 정오를 지나 오후 2시까지 뒤척이지도 않고 누워 있어서 죽은 거 아닌가 코 밑에 손가락을 대 본 적이 많다고 한다.
뇌도 안 뒤척이는지 잘 때 꿈도 잘 안 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꿈을 꾸고 깨어날 때 까먹는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거의 모든 꿈을 까먹는 사람이다. 어쩌다 꿈이 기억나면 신기해서 꼭 의미 부여를 하고 싶어진다. 하늘을 난다거나 괴물이 나타나거나 마법을 부리는 신기한 꿈은 잘 안 꾸고 현실적인 꿈만 꾸는 탓도 있다.
수면 기록을 측정해보면 잠이 시작되자마자 뚝 떨어진 그래프가 열 시간 내내 바닥을 기다가 일어날 때 갑자기 올라온다. 좋은 건 아닐 것 같다. 중간에 얕은 수면도 섞이고 꿈도 꾸고 이래야 좋은 거 아닌가? 자세히 찾아보진 않았다. 내 수면 그래프를 본 친구가 ‘이건 그냥 잠깐 죽는 거 아니야?’라고 한 적이 있다. 이게 내가 잠을 좋아하는 이유다. 잠깐 죽기.
잠은 작은 죽음이다. 매일 반복되지만 매일 같지 않으니 작고 새로운 죽음이다. 오늘 하루가 행복했어도, 고단했어도 밤이 오면 작고 새롭게 죽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원하는 만큼만 죽어 있을 수 있다니 황송할 따름이다.
죽음의 가장 큰 특징은 영원하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일 텐데 매일 새롭게 깨어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긴 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이렇게 가짜인, 그리고 작은 죽음을 살짝 맛만 본다고 크게 나쁜 짓 같진 않다. 잠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아… 잠은 좋아.
저것도 틀린 말이다. 나는 잠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었다. 가장 큰 갈등은 고등학교 때 엄마 그리고 학교와 겪었다. 밥 잘 안 먹는 걸 빼면 나름 키우기 편한 갓기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잠 귀신 시기’는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난다.
고등학교 등교 시간은 8시 정도였던 것 같다. 중학교보다 위치도 멀어서 훨씬 일찍 일어났어야 했는데 그게 도무지 안 됐다. 엄마는 아침에 나를 깨우느라 얼굴에 물도 뿌리고 - 물 맞은 채로 잠, 소리도 지르고 - 시끄럽다고 생각하면서 잠, 진짜 억지로 들어다가 화장실에 넣고 - 욕조에 쭈그리고 앉아서 마저 잠, 등등 별 방법을 다 썼다. 사실 나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자고 있었으니까.
한번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엄마가 이럴 거면 학교 다니지 말라고 내 교복이랑 교과서를 다 현관문 밖으로 집어던졌다는데 그것도 나는 모른다. 그날 9시 정도까지 꿀잠 자고 일어나서 학교 갔다. (옷이랑 책은 아마 동생이나 아빠가 집에 다시 넣어 놓은 듯하다)
그 난리를 치고 학교에 가서는 또 미친 듯이 잤다. 0교시에 자고, 2교시에 잠들었다 점심시간에 깨고, 5교시에 졸다가 7교시에 정신이 들고, 야자 시간에 자다가 교장한테 혼났다. 당시 담임이 진지하게 수면 클리닉에 가보라고 했는데 그냥 무시했다. 중학교 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확실히 수면 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학교는 일찍 끝나니까 학교에서는 별로 안 잤는데, 3시쯤 집에 와서는 교복도 안 갈아입고 바로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러다 저녁 8~9시에 엄마가 퇴근하면 같이 밥을 먹고 11시 정도부터 다시 잤다. 하루에 13~14시간 정도를 잔 것이다. 매일.
그때 나는 그렇게 많이 자고 싶지 않았다. 좀 무서웠다. 계속 잠이 오는데 뿌리쳐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소파에 누웠고,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고 잠들었다가 중간에 잠깐 눈을 뜨면 오후 5시, 이제 진짜 일어나야 하는데 생각만 하면서 다시 잠으로 끌려 들어갔다. 거의 반 년을 잠에 시달렸다. ‘자다가 죽은 사람’ ‘영원히 잠든 사람’ 이런 해외토픽 기사 찾아보면서 괴로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정도면 굿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었을까? 조금 더 생각해보니까 정신과 다녔어야 하는 거 아닐까? 중학교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잠으로 도피했던 거 아닐까? 쉽지 않은 동네의 쉽지 않은 학교였기에 그냥 학교를 다니고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큰 에너지가 들기는 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합쳐져 지금도 중학교 시절 기억은 흐릿하고 애매하다.
아무튼 그 시절에 비하면 고등학교 때는 애교였기 때문에 (’수면 클리닉은 재작년에 갔어야죠’) 그냥 버텼다. 그러다 졸업했다. 대학은 시간표를 내 마음대로 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국이었다. 11시 전에 시작하는 수업은 웬만하면 안 들었고 듣게 되면 대체로 C 이하를 받았다. 문제는 연애, 그중에서도 주말 데이트였다. 시간 장소를 명확히 하지 않고 대충 ‘내일 만나서 점심 먹자’고 하면 꼭 3시가 넘어서 깼다.
진짜 최악이다 싶지만 이건 최악도 아니다. 오후 1시쯤 일어나놓고 더 자고 싶어해서 상대방을 열받게 한 적은 얼마나 많았는지. 어이가 있는 대로 털린 상대가 ‘응 그냥 더 자…’라고 하면 사랑이 샘솟는 것을 느끼며 다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니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더 자’인 것 같아^^’ 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로 일관하던 쓰레기 같은 시절…
어쨌든 평일에도 비교적 많이, 마음껏 잘 수 있게 되면서 잠 문제는 나아졌다. 잠이 부족하다고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고3 땐 밤잠은 6시간 정도 잤지만 낮에 학교에서 보충했으니 그렇다 치고, 요즘은 이런저런 약속들과 일정 때문에 하루에 6~7시간씩 자는 기간이 생겨도 딱히 지장이 없다. 체력이 떨어지는 느낌도 아니고 낮에 졸리지도 않다. 조금만 자도 되지만 많이 자는 게 좋을 뿐이다. 1인분만 먹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싶어서 2인분씩 먹는 먹짱들의 기분이 이럴까?
잠은 정말 좋다. 침대에 누울 때부터 몸에 이불이 닿는 감촉과 함께 기대감이 몰려온다. 오늘도 무사히 잠을, 의식을 꺼트리고 푹신한 물체에 몸을 누이는 이 행위를 맞이하는구나. 이렇게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또 예전에는, 특히 학생 때는 잠을 많이 자는 게 어떤 게으름이나 못남의 상징 취급 받았지만 지금은 부러움까지 산다. 잠들기 어렵고 푹 자는 게 힘든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잠을 조금 덜 자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활동이 아주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것들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잠이 좋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이 드라마의 다음 편이 너무 궁금해도 내일 일어날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웬만하면 바로 덮는다. 잠 시간을 줄일 만큼 뭔가가 재미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너무 주제넘은 소원일 수 있지만 만약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잠에 드는 것처럼 죽고 싶다. 그땐 경험한 것 중 가장 크고 하나도 새롭지 않은, 매일 반복해왔던 낡은 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래서 할머니들이 자는 듯이 가고 싶다고 하는 거구나. 어른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