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을 하다가 학교를 잘리고 감옥에 가고 공장에 가고 또 감옥에 가고 어쩌고를 거친 일명 ‘386세대’ 이야기는 과대표되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많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그래도 이젠 좀… 늙지 않았나?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꼴을 보고 바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법정에서 판사한테 호통쳐서 홀어머니를 기절시키고(아버지 대신 재판에 왔던 외삼촌한테 싸대기를 맞았다고 한다), 가정을 꾸리고 사회인이 된 뒤에도 옛 단체를 후원한다? 이 정도도 꽤 들어본 이야기인 것 같다. 최소 나에겐 ‘그럴 수 있어’의 영역이다. 나의 부친이 이 정도라면 한나라당-새누리당-국민의힘을 찍는 부모와 정치 성향 때문에 다툴 일 없어서 좋네,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 이야기는 <아버지의 해방일지>까지 갈 것도 없이 <이중 작가 초롱> 선에서 다 정리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60살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일주일에 6일을 회사에 가서 일하고 일주일에 7일을 당 사무실로 퇴근해서 또 일을 하는 삶. 그리고 집에 오면 혼자 책을 읽으며 ‘학습’하는 삶은… 별로 없지 않나? 솔직히 좀 무섭다. 사람이 그렇게 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에서 만난 그 어떤 사람도 무섭지가 않았다. 니가 지금 나한테 호통을 쳐봤자. 협박을 하고 혼을 내봤자. 무서운 척해봤자. 나는 진짜 무서운 인간에게서 태어났고, 그와 30년 세월을 함께 했다. 얼마나 무섭고 독하냐면 60대인 지금도 30대 시절과 몸무게가 똑같은 인간이다. 30년을 투잡을 뛰고 밤마다 ‘학습’하고 주말마다 집회에 나간다. 광화문 시청뿐만 아니라 제주도까지 간다. (이제 웃음 사라지고 몸서리 치며 쓰는 중이다.)
십 년 전 쯤인가? 총선 기간에 차 쓸 일이 있어서 부친 차 트렁크를 열었는데 모 정당의 피켓과 유인물, 어깨띠가 한 무더기 들어 있었을 때의 경악을 잊지 못한다. 엄마도 나도 몰랐다. 엄마가 이게 무슨 일이냐며, 자기가 물어봐도 대답 안 할 테니 니가 운동권 친구들(?)을 통해서 좀 알아보라고 했다. 누굴 통할 필요도 없었다. 조금 검색해보니 지하철 역 선거운동에 지역 당 사무실 활동까지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는 사진이 무더기로 나왔다. 아니 이 미친 당은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중년을 지나 노인으로 향하는 사람을 지하철에 세워? 물론 아무도 협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안다.
그때 부친의 활동을 엄마도 나도 몰랐던 이유는 당시가 통진당이 해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서다. 당을 잃었으니 얼마간은 충격 때문이든 사리기 위해서든 조용히 지내겠지 생각했던 것이다. 역시 ‘자본주의에 찌들은’ 사람들답게 나약하고 안일한 생각이었다.
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그맘때부터 집회 시위에 잘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는 몰랐는데 직업 활동가도 아닌 사회 초년생이 직장에 다니며 주말에 집회도 뛴다는 건 웬만해선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원래는 시위 현장 저 멀리에서 부친을 발견하고, 어떤 깃발 아래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는지 파악한 뒤 엄마에게 공유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무엇보다 부친과 나의 관계가 파국을 맞이한 지 몇 년이 지난 뒤라 더 관심이 없었다.
지난 편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애비와 연 끊은 썰’을 마저 잇자. 대학에 입학한 뒤 1년 동안은 미친 듯이 술을 먹고 놀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히려 평화로웠다. 그런데 2학년 때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운동권(?)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말았다. 자연히 운동권 술집(링크)에 다녔고 일주일에도 여러 번 집회에 나갔고 그 판이 한 줌이고 그놈이 그놈이다 보니 ‘@@당 %%지부에서 활동하는 ## 선배 딸이 PD 무리와 어울린다’는 소문이 부친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구라 같지만 당시에는 진짜 저런 일이 가능했다. 집회에 가서 학교 총학 깃발 아래에 서 있으면 NL 계열 사람들이 와서 ‘## 선배 딸이시죠?’ 하고 악수하고 갔다. 근혜 공주가 부럽지 않았다…
(주: NL/PD 정파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길게 설명할 수 없으니 대략 NL=민족해방, 통일 등 민족 문제를 중시함 / PD=민중민주, 노동 등 계급문제를 중시함 이라고 퉁쳐본다. 네이버에 검색해보셔도 안 잡혀가니 궁금하시다면 ㄱ)
나는 아무 생각 없었으나 부친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통일전사로 키우려던 딸이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PD 놈들과 어울린다니? 차라리 학점에 집착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평생 소시민적 행복을 추구하는 게 낫지 운동판을 맴돌면서 통일전사는 되지 않겠다니??? (오늘도 웃음을 참는 데 실패하다) 그래 나 같아도 이름을 말 그대로 ‘NL’이라고 지어 놨는데 엉뚱한 놈들하고 어울리면, 그것도 약올리듯이 완전 딴 부류도 아니고 바로 옆에서 맨날 깐족대는 놈들하고 어울리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었다. 나를 이렇게 친-운동권 성향으로 키운 것이 자신이면서 계파까지(?) 관리하려고 하다니 말이 되나? 그리고 솔직히 NL은 너무 (생략)이지 않나? 물론 이런 정파적 토론을 나누지는 않았고, 같은 집회에 참여했지만 서로 다른 깃발 아래에서, 적으면 5천 명 많으면 1만 명이 꼴랑 모인 광장에서 각각 전경에게 캡사이신 물총을 맞고 몸싸움을 벌이며 시간이 흘렀다. (엄마: 근데 둘이 맨날 같은 데 가는 거 아냐? 왜 매번 따로 들어와?)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날도 나름의 큰 집회가 있었던 날인데… 아마 철도파업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어떤 남자애가 집회가 끝난 뒤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고, 아시다시피 사귈 때보다 사귀기 직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밤중에 집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데 뒤에서 부친이 등장했다. (”넌 누구냐?”) 그냥 친구라고 했으면 됐을 것을 그놈이 쓸데없이 꼼꼼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바람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놈은 노래패였던 것이다. 이제 남자까지 PD 놈을 만나? (주: 놀랍게도 나이 든 운동권에게는 누가 어떤 동아리라고 하면 상대의 계파를 바로 파악하는 신묘한 능력이 있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으니 각색된 대화로 갈음한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나, 못 들어가게 문고리를 잡은 부친과 대치하며 대화)
부: 이상한 놈들하고 그만 어울려 다녀라.
나: 아빠가 어울리는 놈들이 제일 이상하다.
부: 헛소리 말고 이럴 거면 공부나 해라.
나: 내맘이다. 너도 니 맘대로 살지 않냐.
부: 이렇게 살 거면 아예 인연을 끊자.
나: 어~!
엄마: 헐 ㅋㅋ;
이 날 이후 거의 십여 년 동안 서로 말을 안 하는 상태다. 물론 할머니 댁에 간다거나 환갑 식사 등 필요한 날엔 최소한의 말은 한다. 서로 허공에 대고 말하지만… 확실히 부친이랑 성격 똑같은 건 맞는 듯하다. 쓰면서 기억을 되살려보니 그때 그 남자애가 노래패가 아니라 풍물패였으면 아직까지 부친하고 사이가 좋았을 수도 있다. (너무 웃느라 콧물 나온다)
이젠 그런 말 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한때 누가 ‘NL은 종교’니 뭐니 하면 겉으로는 (^^)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론 겁나 비웃었다. 니가 종교를 알아? 진정한 종교인과 함께 살아온 사람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종교의 힘은 대단해서 개인의 영달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도 사회도 사랑도 모두 뒷전이 된다. 이러니 입으로만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 정치적/종교적 신념, 또는 의리나 사랑 같은 것을 외치고 또 변절하는 녀석들을 유난히 비웃게 된다. 이 녀석들아, 그런 가치를 지킨다는 게 얼마나 지독하고 어려운 일인지 알아?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나서 부친과 연을 끊은 사이(?)라는 사실에 많이 무뎌졌다. 어쩌다 엄마 집에 가서 부친을 마주치면 멀뚱~하게 서로 한번 쳐다보고 그냥 쌩깐다. 엄마한테는 좀 미안하긴 하다. 나도 부친만큼 지독해서 엄마랑 동생이랑 나랑 셋이 가기로 했던 여행에 자꾸 부친도 데려가자고 하는 게 짜증나서 여행 다 취소해버린 적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처음부터 넷이 가고 싶다고 말했어야지 그럼 처음부터 예약도 추진도 안 했을 텐데 중간에 말을 바꾸니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부친이 나이가 들어 무뎌지고 힘이 빠지면 우리 둘을 화해시키려고 했는데, 이제 또 나까지 나이가 들기를 기다려야 한다. (엄마: 헐 ㅋㅋ;)
나는 딱히 운동권도 아닌데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는 이유만으로 운동권 내 동족상잔의 비극이 우리 가정을 휩쓸고 말았다. 지난 번 글에서 내 인생 나름 달달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조금 쌉쌀하기도 하다. 한국에 운동권은 몇 명이나 될까? (껄껄 웃다가 흐느끼는 중) 또 그 안에서 NL PD를 가르면 각각 몇 명씩일까? 우리 사회에 운동권이란 녀석들은 한 줌 중의 한 줌, 한 꼬집 중의 한 꼬집에 불과하지만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이렇게 웃긴 이야기도 있다는 사실.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고 인생은 예측불허다. 하지만 아무리 인생이 예측불허이더라도 나와 부친은 언젠가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생각해봐도 NL 남자애들 중에는 단 한 명도 사귀고 싶은 놈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다들 착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