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 읽기가 정말 재밌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사실 가을은 책 읽기 가장 안 좋은 계절이다. 바깥 날씨가 너무 좋고 경치가 아름다우니 이런 때 실내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고 있는 건 확실히 손해다. 내가 말한 ‘요즘’은 꽤 긴 시간을 거쳐 돌아온 시기다. 한… 10년 정도? 그렇다고 10년 동안 책을 안 읽은 것도 아니고 1년에 50~100권씩은 읽었을 텐데, 유난히 더 못 견디게 즐거워진 것이다. 갑자기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몇 달 전 이사한 집이 도서관과 정말 가깝다. 뛰면 20초 거리다. 진짜 좋은 집 아니냐고 흥분했더니 회사 동료가 ‘도서관을 좋은 입지 기준에 넣는 건 너랑 ### 밖에 없을 거’라고 비웃었다. 여기서 ###는 동료의 부인으로, 출판 편집자로 오래 일했으며 지금도 콘텐츠 기획/편집 일을 하고 있는 내 친구다. 하지만! 그 녀석이 뭘 몰라서 그렇지 언젠가 ‘역세권’ ‘스세권’ ‘초품아’ 처럼 도서관도 거주지 최고의 입지 중 하나로 회자되는 날이 올 것이다. 대략 30년쯤 뒤에 ‘도세권’ ‘도품아’ 같은 말을 듣게 되면 저를 떠올려 주시길.
아무튼 예전 집에서도 도서관이 멀었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정말 가깝다.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길에 도서관 한번 들르고, 퇴근 길에도 괜히 한번 가보고, 맥주 사러 가기 전에 책 반납하고 이런 식이 되니까 이제 슬슬 도서관이 내 서재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집으로 돌아오면 도서관에서는 즐길 수 없는 햇빛과 커피와 개인 의자에 앉아 그 책을 바로 읽을 수 있다. 엄청난 부자가 된 것 같다. 이걸 즐기고 누리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아래층에 사는 할아버지도 매일 도서관 앞마당에서 산책을 즐기시는 것 같다.)
이 와중에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사실 오늘 레터를 쓰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도저히 쓸 말이 없었다. 소재 고갈에 몸부림치고 있다고 하니까 친구가 한강에 대해 써보라고 하면서 그게 나한테 최근에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라고 알려줬다. 그랬을 것이다.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직후부터 엄청나게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조용히 축하’ 이런 거 없고, 그냥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든 말을 쏟아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까지 책이나 작가 이야기를 꺼내면 세 번 이상 대화의 핑퐁이 이어지기가 어려웠으나 이번엔 달랐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모는 이모랑 엄마가 졸업한 국민학교에 한강 작가가 다녔었다는 이야기까지 해줬다. 저마다 책이나 작가에 얽힌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게 너무 재밌다. 그래. 내가 늘 원하던 게 이거라고.
또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한강 작품을 추천해달라, 혹은 주문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평소 누구에게나 책 추천을 해주고 싶어서 있는 힘껏 사람들을 야리고 다니는 - 요새 심심하지 않아? 책 읽고 싶지 않아? 재밌는 책 뭐 있냐고 물어보고 싶지 않아? - 나로서는 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엄마는 본가에 남겨두고 온 한강 책을 다 끄집어내서 뿌듯해 했다. 뭐가 뿌듯한지는 모르겠으나 동생한테 ‘언니가 예전에 한강을 엄청 좋아해서 우리 집에 한강 책이 다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하 또 갑자기 한강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가 떠오른다. 잔치 못 하게 하면 병 나시는 거 아닌가… 딸이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걸로도 뿌듯해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 딸이 실제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니… 그런데 잔치를 못 하고 조용히 축하해야 한다니… 물론 이해는 하지만…)
사실 우리 집에 한강 책이 다 있는 건 아니다. <소년이 온다> 이후로 나온 책은 없을 거고 시집도 없다. 하지만 내가 한강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랑무늬영원>이 있고, 한강의 작품치고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희랍어 시간>과 중편 동화인 <내 이름은 태양꽃>이 있고, 무엇보다 <내 이름은 태양꽃> 전체를 필사한 노트가 있다. 이 노트는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옮겨 적고 선물해준 것이다. 엄마한테 그 노트 어디 있는지 좀 찾아보라고 했는데 엄마가 그것만은 싫다고 거절했다. 그 노트에 원한과 저주가 서려 있을 거라고 한다. 내가 본가에 가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엄마 말대로 나는 예전에 한강을 엄청 좋아했다. 그때 누가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보면 한강이랑 김연수라고 대답했다. 그러다 사람이 사회생활도 하고 돈도 벌고 하면서 나름의 안정을 찾고 구마된 뒤로, 그리고 나이를 먹으며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진 뒤로 박완서나 최진영, 박서련 같은 이름을 댔다. (이 계보는 박솔뫼 이미상까지 내려오다가 지금은 일단 멈추어 있다.) ‘한강과 김연수’ 시절에는 늘 슬프고 화가 날 준비가 돼 있었다. 대체로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조금의 부당함에도 화르륵 화가 났고 쉽게 절망하고 슬퍼하고 그랬다. 또 그때의 세상도 지금과 다르지 않게 부조리로 가득했던 곳이라 그냥 맨날 화냈다 울었다 난리를 쳤던 것 같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이런 것이다. 정말 추운 겨울에 뭐시기 집회에 갔다가 최루액도 맞고 경찰이랑 몸싸움을 하고도 기력이 남아 새벽까지 술을 퍼 마시고 조용히 집에 들어왔다. 나는 이제 즐겁게 술 마시고 나서 따뜻한 집에 들어왔는데 아직도 거기에 남은 사람들이 있다는 게 슬프고 화도 나고 특히 나 자신에게 야마가 돌아서 혼자 잉잉 우느라 잠이 안 왔다. 그럴 때 꼭 손에 잡히는 게 한강 책이었다. 가뜩이나 술 마셔서 볼이 뜨거운데 우느라 눈알까지 뜨겁고 그 와중에 한강 책을 읽으면 뇌가 불타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스스로를 벌 주고 괴롭히려고 그 책과 문장들을 이용했던 것이다.
인생 전체가 길고 긴 고통이라고 생각한 시절이 지나자 나의 독서도 고통에서 멀어졌다. 실제로 그때부터 전자책을 애용했기 때문에 종이책이라는 ‘물건’과 무게와 물리적인 고통에서도 멀어졌다. 그렇게 거의 10년을 떨어져 지냈는데 다시 한강이라는 세계가 등장하고 만 것이다! 말 그대로 세계적인 개 큰 등장. 대학을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다시 책이라는 것과 사랑에 빠졌는데 때마침 당시의 작가가 거대하게 등장했다는 게 너무 반갑고 감사하고 신나고 즐거워서 요즘 나는 말을 멈추지 못했다. 지금도 거의 3천 자 넘게 말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혼자만의 ‘종이책 안 사기 운동’을 펼쳤었다. 종이책을 쌓아두기에는 집이 너무 좁고, 주기적으로 이사를 다녀야 하는데 이 짐을 다 이고지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음식물 반입 금지 정책’(링크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보실 수 있다.) 보다는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었으나 방 두 개짜리 16평 빌라로 이사하면서 슬금슬금 해이해졌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는 책꽂이를 정리했는데, 어라? 생각보다 널널하고 꽤 많은 공간이 남는 것이 아닌가. (…) 또 앞서 말했듯 도서관이 지척에 있다. 종이책 읽기의 즐거움에 다시 빠져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자책으로만 책을 읽으면서 편향되었던 독서 목록이 이제 다시 뚱뚱하고 넓어진다. 행복한 일이다. 최근에는 <다크룸>을 읽었고 이제 <0년>을 읽으려고 한다. 친구가 번역한 <아이링, 칭링, 메이링>도 중간까지 읽고 덮어두었는데 다시 펼쳐볼 예정이다.
서너 권을 동시에 읽으면서도 다음에 읽을 책 때문에 마음이 급한 이 기분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렇게라면 다가올 평생이 두렵지 않을 것도 같다. 며칠 전 다시 한강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십 몇 년 전에 어두컴컴한 거실 한 쪽에서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쏟던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분명 아직 내 어딘가에 있긴 있을 텐데(죽었니?) 어디쯤 있을지 짐작도 안 간다. 하지만 이 글들은 계속 남아서 어떤 건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