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자꾸만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다 보면 감상은 얕아지고 나중에는 이 자극들이 피로로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럼 안 보면 될 것 아니냐?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다. 주말에라도 아름다운 것들로 뇌를 씻어주지 않으면 평일의 못생긴 것들을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단 말입니다.
한때 수많은 학생들의 안압을 높이는 데 일조했던 드림렌즈라는 물건이 있다. 요즘도 파는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참 무식한 방식으로 시력을 높여주는 렌즈였다. 자기 전에 착용하고, 다음날 일어나면 밤 사이 렌즈에 짓눌려서 얇아진(?) 각막이 근시 정도를 낮춰주는 원리이다… 그럼 낮 동안 일시적으로 시력이 올라간다고… 대충 들어도 눈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지만 아무튼 우리 때 유행이었다. 그러니까 주말의 허겁지겁 문화생활은 조금 더 주기가 긴 드림렌즈 같은 것이다. 전시가, 영화가, 독서가, 음악회가, 안구를 꾹~ 눌러줘. 그럼 화요일 정도까지는 대강 흐린 눈으로 못생긴 것들을 허허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 보면서 살고 싶다. 듣는 건… 굳이 따지자면 듣는 것도 아름다우면 좋겠지만 이왕이면 아무것도 안 듣는 게 제일 좋겠다. 평소에는 그냥 모두가 조용했으면. 어쩌다 한번 귀를 쓸 땐 그게 아주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짜릿한 선율이기만 했으면 좋겠어… 못생긴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아무튼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상당한 편인 것 같다. 나 같은 놈들이야말로 구상관 수행을 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본 전시*차재민, <광합성하는 죽음> 에서 구상관을 은유하는 썩어가는 과일과 빵을 보면 거기에서조차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미친 사람들이 있다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아…)
예를 들어,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왔는데, 그때 친해진 친구 중 다수와의 우정은 나의 접근으로 시작되었다. 새 학년이 되어 교실에 들어서면 그 교실에서 가장 예쁜 아이를 마음 속으로 점찍고 걔랑 친해졌다는 뜻이다. 나는 항상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 것, 내가 좋아하는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리고 건축이나 미술작품을 다룬 예술서를 좋아했다. 이것이 어떻게 얼마나 왜 아름다운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남의 분석을 읽는 일도 매우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짓을 무한으로 해도 되는, 오히려 권장되는 전공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그 결과 대학 내내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아름답지 않은지, 아름답다는 게 뭔지, 나는 왜 이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아름다움은 존재하는지, …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과 답들을 잔뜩 배웠다. 덕분에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은 것, 아름답다가 미끄러진 것, 아름다우려다 퍽 하고 폭발하는 것, 어쩌구 들을 많이도 봤다. 이 훈련은 매우 즐거웠다. 그 결과 얻게 된 교훈과 삶의 태도에도 감사한다.
그건 일상 생활에서 ‘미의 기준’ 같은 것을 내세워 지랄하지 않는 태도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 아름답지 않은지 평가하고 싶어질 때마다 최대한 깝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보통 예술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어느 선을 넘어가면 나의 지랄이 끝을 모르고 날뛸 것 같다. 그리고 살면서 보아온 많은 헛발질은 나대야 할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지 못해서, 얄팍한 기준과 잣대를 맞지 않는 곳에 들이대서 발생하고는 했다. 대학 시절 본인의 ‘심미안’을 뽐내던 수많은 학우들의 얼굴이 빠르게 스친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까다로우셔서 거울은 어떻게 보냐고 그들을 욕하곤 했다… 아주 잘 포장을 해보자면 평론에 대한 띠꺼움이 그때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든 직접 만드는 사람에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셀 수 없이 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있었고 거기에 입을 대는 사람에게는 깝침과 나댐만이 있을 뿐이다. 모두는 조금이나마 더 아름다운 것을 택하고 싶어한다. 나는 대부분의 인간에게 그런 본능이 있다고 믿는다. 그 선택의 결과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보통 타고난 재능이나 가진 예산의 문제다. 그러니 남의 섬세한 선택에 입을 대지 않을 절제를 저에게 주시길… 오늘도 기도.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사람 특유의 얄미움이 있다. 이 얄미움의 연장선상에서, 나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전혀 없지만 아름다운 것을 즐기는 재주가 있다. 얼마나 얄미운 일인지. 그리고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아름다운 것들이 무한으로 제공되는 세상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것들을 다 보지 못할 만큼. 내 감상보다 각종 아름다움들의 탄생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래서 어쩌다 외출하는 주말 만 보씩을 걷게 되는 것이다.
길게도 썼지만 요약하자면 주말에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빛나는 재능을 갈고닦아 한 상 거하게 차려놓은 결과물만 쏙쏙 빼먹고, 평일에는 눈을 반쯤만 뜬 채로 응 그래 우리 다 못생겼으니까 적당히 넘어가자고요 하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그린 듯한, 전형적인 서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매우 아름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에 아름다움은 아주 드물고 이런 모습이 있어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는 것을… ^^ 일관된 얄미움으로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