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문진표를 작성하다 멈칫한다. 질문: 지금까지 평생 총 5갑(100개비) 이상의 일반담배(궐련)를 피운 적 있습니까? 질문에 답하자면 존나 예! 지만 어쨌든 끊은 지 꽤 됐다. 난 아마 이제는 나름 깨끗한 폐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덕지덕지 붙은 부사만큼 구차하지만, 진짜로. 그러니까 내가 만약 60살이고 20살 때 5갑의 담배를 피웠던 게 다라면 그래도 저 질문에 “예”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한때의 흡연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된다는 것인가? 사실 어떻게든 좀 봐주십시오 하는 마음이 든다. 이제 와서 봐주기엔 너무 많은 양의 담배를 피웠을지도 모르지만…
스무 살이 된 순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담배는 안 했다. 우선 일가친척 중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몇 년 뒤 모친에게 ‘우리 집안 최초의 흡연자! 선구자!’라는 멸칭을 듣게 된다.) 그때까지 제일 가까이에서 본 흡연자는 고등학교 때 학년 주임이었다. 그는 잦은 그리고 과한 음주와 흡연을 즐겼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매우 검고 입술은 매우 보랏빛이었다. 이름이 ‘OO각’이었던 그의 별명은 ‘저승사각’. 아무래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도 건강하신지. 아니겠지.
대학 1학년 1학기 시간표는 필수 교양과 전공 탐색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았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그랬다. 나는 학점을 잘 준다는 ‘꿀강의’로 소문난 수업을 ‘광클’하는 동기들을 속으로 비웃는 쪽이었다. 아니다 속으로 비웃는 줄 알았지만 당연히 다 티 났겠지. 아무튼 나는 어려워 보여도 흥미롭게 느껴지는 수업을 선택하고, 1학년이 한 명뿐인 강의에 들어가서 교수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저 멀리 떨어진 다른 단과대의 수업을 듣느라 캠퍼스를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재수 없는 신입생이었다. (학점은 누구보다 인간적이었으니 쌤쌤.)
그중 한 강의가 정말 좋았다. 거의 사랑에 빠졌다. 은퇴를 앞둔 명예교수의 마지막 강의라고 했다. 이 은퇴는 다른 많은 은퇴처럼 번복되었다. 어쨌든 이 교수는 엄청난 할아버지였고, 학생의 이름 뒤에 ‘군’을 붙여 불렀고, 레포트를 원고지에 손으로 써서 내라고 했다. 완전 80년대 대학 체험이었다. 본인의 저서로 진행되는 수업은 누가 들어도 최소 20년 전부터 토씨 하나도 안 다르고 똑같겠구나 싶었지만 그래서 더 빛나게 매끈했다. 나는 지금도 그 수업이 그 과목 최고의 개론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수의 초탈한 거리두기 덕분에.
그 수업 최고의 순간은 까마득한 제자라는 유명인을 불러 했던 특강도 아니고, 손으로 적어낸 레포트와 시험지에 커다란 A+가 적혀 있었을 때도 아니다. 강의가 끝나고 유유히 복도를 걷는 노교수의 뒤로 피어오르던 담배 연기를 본 순간이었다! 지금이었다면 이런 미친… 노인네가 노망이 났나… 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때 어리고 어리석은 스무 살의 눈에는 그 연기가 자유와 지성의 상징으로 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날 알바를 마치고 바로 앞 슈퍼에서 할아버지 교수를 따라 마일드세븐과 라이터를 하나 샀다. 이제는 메비우스로 이름을 바꾼 마일드세븐이 ‘아저씨 담배’의 전형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는 당연히 하나도 몰랐고 일단 아는 담배가 그것밖에 없으니까. 준비성도 철저하게, 담배를 처음 혹은 오랜만에 피우면 띵하고 어지러울 수 있다는 이야기는 또 어디서 들어서, 어딘가 골목에 쭈그려 앉은 채로 두 대를 피웠다. 그때부터 흡연자가 되었다.
하루에 5개비 정도 피웠던 것 같다. 강의 중간에 나와서, 술을 마시면서(그때 자주 가던 술집은 실내 흡연이 가능했는데 이 또한 지금 생각하니 놀라운 일), 일을 하다가, 전경에게 라이터를 빌려, … 졸업하고는 취업까지 출판사에 해버린 바람에 담배 친구는 언제나 넘쳐났다. 친구도 많고 술 친구도 많고 담배 친구도 많고. 인생의 고통을 마음껏 팽창 시키고 모두와 함께 고통을 즐기고 마음대로 건강을 망치는 게 이십 대의 특권 아니겠냐 하면서.
그러다 몇 년은 끊었다. 수많은 흡연자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건강이 걱정되어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 처음 만나는 사람이 담배를 권하면 거절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다니지 않았던 시절이 몇 년쯤 있었다. 그러다 회사에 앉아 있으면 숨이 막혀오던 시절에 다시 피웠다. 갑자기 식은땀이 날 것 같으면서 목구멍이 조여오는 기분이 들면 담배도 소용 없었지만 사무실에 앉아 있느니 옥상으로 올라가면 한결 나아지는 듯했으니까. 카페인보다 더 빠르게 니코틴이 쭉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시 담배를 끊은 이유는 확실하게 기억한다. 무엇에도 의존하기 싫어서다. 시작은 귀여웠으나 그 끝은 재수 없으리라… 그때 나에게는 어떤 자신이 필요했다. 필요할 때면 무엇이든 다 끊어낼 수 있다는 자신. 술도 안 마셔보고(가능), 담배도 안 피워보고(가능), 커피도 안 마셔보고(가능), 폰도 안 만져보고(불가능), … 그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담배는 당분간 끊자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술보다 덜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배는 그렇게 허무하게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일드세븐과 말보로레드와 기타 등등과 에쎄체인지 1mg을 거쳐… 첫 질문에 은근슬쩍 불평하고 싶었던 마음은 지금 보니 정말 양심 없는 소리였네.
백해무익이라는 건 왜 이렇게 쓸쓸한 말일까? 그래도 술한테는 백해무익이라고 하지 않는 거 같은데 담배한테는 누구나 딱 잘라 백해무익이라고 한다. 그걸 부정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꽤 이익인 점이 있었다. 돌아버리는 야마를 가라앉히기, 반대로 돌지 않는 맷돌을 힘껏 돌리기, 작당모의, 미치도록 심란한 상황을 잠시 툭 끊고 바깥으로 도망치기, 맑은 공기를 더 맑게 느끼기, 찬 공기가 너무 쓸쓸할 때 발암 물질이 가득한 따뜻한 연기 피워 올리기, 열심히(?) 담배를 피우면 얼마나 더 빠르게 죽게 될까 생각해보기.
이런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담배에 기대야 할 만큼 어리고 어리석고 여렸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지나갔다. 인생은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고 한 치 앞을 몰라서, 끊임없이 더 크고 더 센 뭔가를 자꾸 눈앞에 내리친다. 대체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수많은 고난도 담배처럼 쓸쓸하고 백해무익하다. 최선을 다해 외면하고 도망칠 수 밖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