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에서는 부지런히 문화생활도 하였지요. 아까 말한 <인사이드 아웃2>도 보았고 <파묘>를 보며 파하하학 웃어제꼈고 <로봇드림>을 보며 오열하였고 - 뭐야 오열 있었네요 - <벚꽃동산>을 보며 전도연 웅니의 사랑스러움에 치를 떨었고 손열음의 <고잉홈 프로젝트>에서 베토벤을 들으며 내적 비명과 함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온 미쳐버린 생리통에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세상을 저주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네요. 이번 녀석 정말 독하더군요. 사람이 정말 아플 때는 입만 열면 ‘으으으으…’ 이런 신음 소리가 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와! 생리통 대상포진보다 아프다! 쓰고 보니 이것도 회사 때문에 생긴 일. 😡
저에게 무슨 일들이 생겼었는지 빠르게 보고 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이 좋은 계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한데, 일방적인 편지는 이 점이 안 좋군요. 계속 일방통행 이어갈게요. 4월부터 지금까지, 봄과 초여름을 지나 장마철 한복판으로 들어오면서 저는 아주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너무 고상한 표현인 것 같고 실은 속으로 매우 많은 욕설을 내뱉었다는 뜻입니다. 아주 크게. 너무 피로해서 그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기에 제 에어팟은 그 동안 긴 휴가 상태였습니다. 집에서 노래도 안 틀고, 출퇴근 시간에도 노래 안 듣고, 운전할 때도 (거의) 음악 안 틀고, 영상을 보고 싶으면 아이패드 소리를 한 칸만 켜놓고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스스로의 목소리조차 시끄럽게 느껴져서 최대한 말을 줄였고요.
속으로 욕하고, 속으로 생각했을 때의 좋은 점이 있습니다. 많은 일들에 무뎌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면 상대방과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저의 감정과 생각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되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튀고 조금씩 확대됩니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하면 리액션이 없어서 빨리 지치기 때문에(?) ‘이 새끼가? → 왜 저러고 살지? → 에휴 냅두자 저러다 죽겠지 → 소강 상태…’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나름의 도를 닦으며 최대한 웃는 얼굴, 최소한 무표정이라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노력한 게 그거냐? 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입 밖으로 쌍욕을 하지 않은 저 자신이 너무나 대견한걸요?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마음 속의 파도도 조금 낮아질까 기대해봅니다. (초보 특: 쫌만 뭐 되는 것 같으면 설레발 쩔음.) (초보 특2: 그래도 초보니까 괜찮음!)
저는 당연히 부족한 게 아주 많은 인간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부족한, 도무지 찾아볼래야 한 톨도 찾을 수 없는 미덕이 바로 겸손입니다.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나는 진짜 존나 오만한 인간이었구나. 세상 일 다 내 뜻대로 된다고 착각하면서 살았구나! 손 쓸 수 없는 바깥에서 몰아치는 파도에 휩쓸리면서 생각했어요. 이래서 하체가 중요하구나… 이래서 코어 운동을 해야 하는 거구나… 자연의 힘은 정말 강력하구나… 그럼에도, 놀랍게도, 저는 아직 겸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힘에 당했으면 그저 고개를 숙이고 휩쓸려야 하거늘(굿을 하거나요…) 그냥 다시 더 빡세게 정신을 차리고 살아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제가 언제 눈물을 흘리며 온몸으로 겸손을 배우게 될지 저도 참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