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별명이 무조건 놀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명 따위 없어도 상관 없었지만, 오히려 없는 게 나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쉽습니다. 그렇게 특징이 없었나? 놀릴 거리가 하나도 없었나? 흔한 성씨에 무난한 이름이라서 그런가? 예컨대 이런 아쉬움입니다. 누군가 눈이 참 크시네요, 라고 말하면 네, 그래서 어릴 때 별명이 ‘왕눈이’였어요. 이런 식의 에피소드를 말하고 싶은 마음이요. 남들에게 손쉽게 나의 특징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 이왕이면 그 설명이 웃겼으면 좋겠다는 욕심…
당연히 이런 아쉬움을 늘 품고 사는 건 아니지만, 새삼 난 왜 별명이 없었을까 한탄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닉네임을 정해야 할 때입니다. 요즘 세상의 서비스들은 대체 왜 아이디 외에 닉네임을 정하라고 하는 걸까요? 유저들끼리 꼭 서로의 닉네임을 불러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저는 모두가 본인의 아이디를 화려하게 꾸미던 버디버디 시절에도 오로지 알파벳 소문자 4개로만 이루어진 아이디를 사용했던 사람이란 말입니다.
아무튼 닉네임을 요구하는 수많은 서비스의 요구에, 어느 순간부터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어떤 과자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서비스에 그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유저는 없더라고요. (이미 사용 중인 닉네임입니다. 라는 문구만큼 사람을 빡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요. 아마 새 비밀번호를 입력했는데 ‘이미 사용하고 있는 비밀번호입니다’가 뜰 때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과자를 좋아하니까 책상 위에 있었던 건 맞지만 이게 나를 대변하는 닉네임으로 활용될 만큼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지? 오히려 이 과자 이름이 닉네임이라는 이유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먹을 거 두 번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시달리면서요. 엇 혹시 이걸로 찝찝함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별명이 없었던 것은 아닐지?…
이 과자 이름 덕분에 한동안 닉네임에 대한 고민 없이 지내왔는데요. 그때쯤 옮긴 직장에서 영어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영어 이름…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영어 이름을 짓자고 해서 그냥 한글 이름 쓰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기억이 나더군요. 그 고집은 오래 가지 못했고 왜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정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면 ‘Melody’로 하겠다고 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그냥 ‘Sue’ 하라고 했던 기억까지 줄줄이 딸려왔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저를 ‘멜로디’니 ‘수’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싫었기에 저는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