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결혼했다고 합니다. 스포츠에 관심 없는 저에게는 여전히 서태지의 이혼 발표가 더 큰 충격으로 남아 있지만, 그래서 오타니 연봉이 얼마라는 건지 (900억? 9000억?) 아직도 모르지만, 아무튼 빅 뉴스이기는 한 것 같아요. 스타에게 쏟아지는 관심이란 그런 거겠죠. 오타니의 결혼 소식이 [속보]로 뜨는 일, 서태지의 이혼 발표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충격으로 남아 있는 일, 사소하게는 아이돌 출신 배우가 육아템으로 사용한다고 소개한 물건이 품절되는 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많은 부, 인기, 그리고 때로는 명예까지 누리는 이들은 대부분 엔터테이너입니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드러내고 뽐내지는 못하니까요. 그래야 하기도 하고요. 반면 배우, 가수, 운동선수 같은 엔터테이너는 잘 드러내고 뽐낼수록 더 큰 부와 인기를 얻게 됩니다.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내는 이들에게는 아낌없는 찬사가 쏟아져요. 가끔은 이럴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나영석 PD가 대단한 창작자인 건 알겠는데 사회의 한정된 관심과 자원이 이 사람에게 이 정도로 쏠릴 일인가? 싶다는 거죠.
나영석이 모두가 원하고 갈망하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만, 그게 진짜 즐거움인지에 대한 고민은 일단 미루어두고, 인간만큼 다양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물이 또 있을지 궁금합니다. 영화, 드라마, 책(엇 하지만 작가는 엄청난 부와 인기와 명예를 누리지 못하는데), 만화, 스포츠, 게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즐거우려는 노력은 때로 헛웃음이 날 정도로 치열합니다.
저는 이 ‘즐거우려는 노력’이 도파민을 원하는 욕망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즐겁게 흘려보내고 싶은 욕망이랄까요. 잔잔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싶은 마음이요. 가끔 너무 바쁠 때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부족하지만 또 어떤 때는 그저 즐겁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친구들을 기웃대며 “잼얘 없니?” 라고 들쑤시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잼얘’가 없고 오직 잼얘를 원할 뿐이기에 우리는 유튜브를 보고 SNS에 접속합니다. 거기에는 온갖 잼얘가 널려 있거든요.
아무리 돌려돌려 말해보려 해도 짜증을 숨기기가 어렵네요. 맞습니다. 저는 재미와 행복을 최대한 누리는 게 인간의 권리라는 듯 당당한 모습이 너무 싫습니다. 우리가 뭔데 이렇게 불행한 세상에 사는 주제에 끊임없이 즐거움을 추구하지요? 우리한테 무한히 즐거워야 할 권리가 있나요?
이제 <더 메뉴> 같은 영화의 주인공이 될 녀석들은 미식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부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게걸스럽게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우리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엔터테인먼트로 쾌락을 추구하는 이들에 대한 쉴드는 생각보다 단단해서 저의 짜증을 더욱 깊게 하고… 그냥 적당히 심심한 상태로 누워서 시간을 보내라고 채찍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누구한테 그 채찍을 휘둘러야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도 현대사회의 일원이기에 잘 압니다. 이런 즐거움 없이는 인생을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걸요. 일찍이 거북이는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 없”다고 노래했지만, 보세요. 이 가사조차 ‘재미 없음’을 배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요즘 ‘도파민 중독’에 대한 경계는 그만큼 이런 즐거움의 힘이 세다는 뜻일 겁니다.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도파민 버튼을 연타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앞으로도 인간의 즐거움 추구는 계속되겠지요. 솔직히 미식 추구나 고전 예술 탐닉보다는 모두에게 공평하고 담장 낮은 엔터테인먼트 추구가 좋아 보이기도 해요. 이럴 줄 알았다면 어릴 때부터 야구를 볼 걸 그랬습니다. 저는 조기 가정 교육으로 인해 프로야구를 보지 않습니다. 한번 시기를 놓치니까 재미도 없고, 뼛속 깊이 새겨진 교육(?)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요. 아무래도 한국 프로야구=전두환이 만든 거임 공식은 잊기 어려우니까요.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럼 산에 들어가서 도 닦아야 한다는 거냐 싶으시겠죠. 이렇게 말하는 저부터도 15년 째 트위터를 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야말로 반복적으로 도파민 버튼을 연타하는 행위일 뿐 그 어떤 리얼 엔터테인먼트의 즐거움도 없는 SNS인데 말이에요. 늘 그랬듯 오늘도 결론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짜증과 한탄, 지겨움, 환멸, 여러분도 공감하시나요? 같은 허공에 대고 하는 질문의 합이었다고 생각해주세요. 그렇다면 왜 갑자기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짜증 한탄 지겨움 환멸이 솟구쳤느냐?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이 망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똥 드라마라고 욕하면서도 마지막 화까지 꼬박 챙겨볼 저 자신도 싫고, 야마도 돌고… 보셨죠? 무조건적인 즐거움, 도파민 추구와 엔터테인먼트 소비란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재미있는 드라마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