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하니까 떠올랐는데 얼마 전 또 소소한 이벤트를 저질렀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운전 면허 따기인데요. 대충 이 기간과 이 날짜를 이용하면 학원 세 번만 가고 딸 수 있겠다 싶어서 바로 몸이 튀어나갔습니다. 합격하기는 했는데, 10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토익 시험을 쳤던 때와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토익 성적하고 영어 실력은 아무 상관 없구나. 면허 시험 성적하고 운전 실력은 아무 상관 없구나.
하지만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계획한 대로 학원에 세 번 가고 땄고, 운전학원에 다녀온 날마다 바로 뻗어서 기절했고, 그게 양주까지 실려갔다 온 탓인지 운전하느라 긴장한 탓인지 모르겠고… 혹시 빠르게 면허를 취득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스케줄을 참고하십시오. 북부, 서부 수도권 직장인에게는 최단 시간을 투자해서 취득이 가능한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 가까운 면허시험장에서 필기시험 미리 치고 강북삼성운전면허학원 등록하기
- 양주행 학원 셔틀에 몸을 싣고 학원 가서 장내기능교육 4시간+학과교육 3시간+장내시험 치기 (Tip! 학원 주위에 아무것도 없으므로 10시간을 꼬박 굶고 싶지 않다면 간식 꼭 챙겨가기)
- 두번째 양주행: 도로주행교육 3시간
- 마지막 양주행: 도로주행교육 3시간+도로주행시험 치기 (이때도 간식 꼭 챙겨가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외할머니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시험 끝나자마자 외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할머니 나 운전면허 합격했다~~~! 대기실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고등학생들이 많았지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깔깔 웃더니 “너한테 어려운 게 세상에 어딨냐, 우리 ##가 못하는 거는 어디 있고, 안 되는 거는 어디 있겠냐”고 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못하고, 안 되고, 어려운 것들이 수도 없이 머리 속을 스쳐가서 대가리 터질 뻔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외할머니에게 저는 그런 존재가 맞기 때문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지요…
일견 맞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재능이란 뭘까요?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이 한때 화제였고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명제에 동의하는 듯합니다. 노력도 재능이 맞다면 저는 아주 쓸모 있는 재능 하나를 타고난 셈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뭔가를 시작하는 재능, 웬만하면 한번 출발한 관성으로 시작한 뭔가를 그만두지 않는 재능.
일단 몸이 먼저 나가는 성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인생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한번에 안 되고 또 하는 게 낫지, 원샷 원킬을 위해 준비만 오래 하는 건 정말 성미에 안 맞아요. 계속 잔잔하게 고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를테면… 꾸준히 CPU를 잡아먹는 어떤 프로그램을 계속 켜놓고 있기 싫은 마음과 가깝습니다. 그리고 섣부른 도전에는 가끔 초심자의 행운이 따르기 때문에 그것까지 고려하면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입니다. 결국 성질 급하다는 소리인데 길게도 하죠?
여기에 더해 깊은 생각, 상상, 공상, 차분한 고민 같은 걸 잘 못합니다. 어릴 때부터 눈 감고 반성하라고 하면 아무 생각이 안 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딴 생각이라도 한다는데 딴 생각조차 안 나더라고요.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라 누군가 “무슨 생각해?” 물으면 “니 죽이는 생각”이라는 대답 밖에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