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방에 초대 받기
대학에 입학한 뒤로 나를 자기 방에 초대해주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친구가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 놀러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그건 친구네 집의 일부가 아니라 진짜 그만의 온전한 공간에 들어가는 거였다. 그 집에 있는 책은 무조건 걔가 선택해 들인 거고 그 집에 있는 먼지나 얼룩은 그가 만들었거나 혹은 없애지 않기를 선택한 결과들이었다. 방 안의 모든 요소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으리라는 상상을 할 수 없어서, 혼자 사는 친구 집에 초대 받는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대충 보려고, 너무 모든 곳을 둘러보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한편으론 걔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어서 힘들었다.
나는 친구들의 방에서 생활감을 느꼈고 걔들이 평소 말로 알려주지 않았던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방 한 면을 가득 채운 2단 행거에 반팔 티셔츠까지 모조리 걸어놓은 친구가 있었다. 난 평소 걔의 어깨에서 어색하게 튀어나온 세탁소 옷걸이 자국을 보곤 했는데, 그 증거를 직접 내 눈으로 보니까 이상하고 신기했다. ‘말씀 많이 들었’던 분을 실제로 만나는 기분보다는 언제나 친구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또 다른 친구를 술자리에서 마주친 기분이었다. 조금 반갑고 조금 친숙한, ‘앗 너구나!’하는 느낌.
그렇게 초대 받는 건 여럿이 술을 마시고 우르르 놀러가는 거랑 전혀 달랐다. 즉흥적인 방문이 아니라 “그럼 수요일에 우리 집에서 놀래?” 하는 초대 과정을 거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초대'해준 친구들은 다 어딘지 어색하지만 정성을 들이고 격식을 갖추어서 나를 대접해줬다.
그래서 친구의 방에 초대 받는 건 부담스러운 동시에 기쁜 일이기도 했다. 그 애들은 간이 안 밴 파스타나 어설픈 단호박 찜, 인스턴트 돈까스 튀김 같은 요리를 하면서 (대학가 원룸의 한 칸짜리 싱크대와 전자렌지, 1구 인덕션으로 저런 걸 해줬다니 기적이다) 자기 얘길 꺼냈다. 이혼한 부모, 죽은 가족, 자기가 느끼는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매 순간 진심으로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딘지 압도되는 기분에 아주 편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걔의 공간에서 걔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걔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던 거 같다. 다들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도, 단둘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아주 많은데도, 음악이 깔리고 타인의 소음이 들리고 가끔 먼 곳으로 눈길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더 그랬다. 열 평이 안 되는 작은 방에서는 아무리 눈길을 돌려봤자 곰팡이 자국이나 싱크대에 위태롭게 걸린 주방가위와 눈이 마주칠 뿐이다.
그 방에서 느껴지는 걔들의 외로움도 나를 압도했다. 나는 20살부터 자취를 시작한 애들한테 경외에 가까운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난 그냥 술도 마시고 대학에 다니게 됐을 뿐 여전한 애새끼인데 걔들은 스스로의 공간과 일상을 꾸려나가는 어른이라는 생각. 그리고 내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쯤 슬쩍 알려주는, 가끔씩 찾아온다는 외로움이나 그리움, 향수병, 고독 같은 마음에 대한 고백이 걔네의 표정을 정말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땐 쓸쓸함이 진짜 어른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로부터 십몇 년이 훌쩍 지난 지금, 혼자 산 지 4년이 넘었지만 난 아직 외로움을 잘 모른다. 그건 진짜 스무 살만 알 수 있는 그 무엇이었을지도 몰라. 이젠 세상이 뭔 짓거리를 해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애들보다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치고 죽고 사기 당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 죽이고 싶다) 어떻게 보면 외로움을 배울 나이에 못 배운 것이다. 그게 아쉽지는 않다. 나는 그때 친구들의 방에서 외로움의 냄새를 맡았고, 그래서인지 자취하는 애들과 연애를 하면 그 방에 가기가 싫었다. 내가 집에 가면 걔네가 다시 혼자 남는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난 가족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지금 사는 방에 가끔 친구들을 초대하지만 우린 그냥 뭔가를 시켜 먹거나 라면을 끓여 부족한 술을 마신다. “우리 집에서 놀래?”가 ‘평소에 하기 어려웠던 이야긴데 너한테 일대일로 해주고 싶어’랑 동의어이던 시절은 한참 옛날이다.
이제는 굳이 친구를 한 명 불러다가 요리를 해주면서 어렵사리 속엣말을 꺼낼 이유가 없다. 부모의 이혼보다 친구들의 이혼이 가까운 나이고 불안과 두려움은 어릴 때보다 부담스러운 주제다. 우린 스무 살 이후로 지금까지 이런 주제를 매끄럽게 묻어두는 연습을 아주 많이 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시끌시끌한 카페 한가운데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다들 그런 이야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세상은 요지경이지만 한편 세상은 요지경이란 사실을 모두가 안다.
앞으로 어떤 집에 살게 되더라도 거기에 친구들을 불러다가 술 마시고 웃고 울고 하겠지만, 앞으로 아무리 많은 집들이를 하더라도 작은 그릇에 넘치게 담은 카레와 짝 안 맞는 수저 세트를 내밀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때처럼 풋풋하거나 어색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때 나를 자기의 방에 초대해주었던 그 애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