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습니다. 덥고 습합니다의 줄임말 같네요. 요즘 뭘 먹으면서 여름을 나고 계신가요? 저는 샐러드, 차가운 국수, 식빵에 햄 치즈를 얹은 샌드위치, 삶은달걀, 요거트, 바나나 키위 천도복숭아 같은 과일을 주로 먹습니다. 여름이면 자꾸 차갑고 상큼하고 어딘지 부실하게 느껴질 만큼 가벼운 음식만 찾게 돼요. 물론 시원한 술도 꾸준히 곁들이죠. 덥잖아요. 그래도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에요.
뭘 먹고 사는지 더 이야기해볼까요. 더울 때일수록 잘 챙겨 먹고 건강해야죠. 소주가 술술 들어가는 평양냉면, 서브웨이 에그마요에 슈레드치즈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많이, 고소한 땅콩소스 맛이 나는 중국 냉면, 샐러리가 잔뜩 들어간 소희 샐러드, 들기름 막국수, 차갑게 칠링된 화이트와인(not chardonnay), 딱 원샷 양으로 탄 쏘맥, 샐러디 콥샐러드, 당근 라페를 잔뜩 얹은 식빵, 쨍한 산미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콩국수, 판모밀, 트위터 레시피 중 유일한 성공작이라고 주장 중인 냉라면, 비빔면, 오이채 맛으로 먹는 김밥, ... 보통 이쯤이면 입맛이 싸악 돌아줘야 정상인데 이번 여름은 쉽지 않네요. 여름 나기 난이도는 점점 더 올라가겠죠.
사실 저는 원래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잘만 먹는 사람이었는데, 더운 곳에 있어도 얼굴만 빨개질 뿐 땀이 안 났는데, 체질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체질이 바뀐 건 2016 여름부터입니다. 그때 사무실이 통유리 건물이었는데, 아무리 블라인드를 치고 에어컨을 틀어도 유리 건물이 데워지는 속도를 이길 수 없더라고요. 그땐 더워서 땀이 난다기 보다는 정말 속에서부터 서서히 데워지면서 익어가는 느낌이라 '이게 더위를 먹는 거구나' 싶었어요. 그해 여름부터 여름이 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킵니다. 원래는 차가운 음식이 조금이라도 급하게 들어가면 탈이 났는데 말이죠. (나... 강해진 것일지도?)
단단히 더위를 먹은 2016년 여름엔 매일 풀만 먹었습니다. 샐러드용 대용량 양상추, 양배추 채 같은걸 씹었어요. 그후로는 웬일인지 안 나던 땀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과장하자면 2016년 여름 전과 후의 저는 아주 다른 사람입니다. 체질이 바뀌었고, 입맛이 바뀌었고, 태도가 바뀌었어요. 이쯤이면 2016년 여름의 더위가 어떤 씨앗을 심은 게 분명하죠. 더위가 가져왔으니 불씨일 수도 있고요. 물론 그냥 화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2016년 이야기는 또 나중에 하기로 해요. 점점 빚이 늘어나는 기분이네요.
정말 너무 덥습니다. 요즘 비가 오는 모양도 참 무서워요. 밝은 하늘에 갑자기 소나기가 흩뿌리고, 한번 올 때 미친듯이 쏟아지고. 10년 전 서울에서 이런 비를 한번 겪고 엄청 신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일상이네요.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어요. 안일하게 물 쓰고, 옷 사고, 고기 구워 먹은 제 잘못이죠. 이제라도 차가운 국수, 새콤한 과일, 아삭한 샐러리를 호로록 씹으면서 반성해야겠어요. 이 와중에 '반성'이라는 말은 너무 나이브하고 재수없지만 별 수 없습니다. 제가 그런 인간인 걸요. 이미 시작된 재앙이 걷잡을 수 없이 닥쳐와도 난 마지막 순간까지 안전한 부류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메릴 스트립도 미국 대통령도 아니면서 그야말로 근거 없이 멍청한 낙관으로 게으름을 포장하는 인간이요.
<돈 룩 업>을 보면서 웃을 수 없었던 건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기후 위기'라고 하면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보던 비디오 영상만 떠올렸는데, 저처럼 안일한 사람들 때문에 위기가 재앙이 된 거겠죠. 소는 이미 잃은 것 같지만 외양간 고치려는 안간힘조차 안 쓰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여러 노력을 해봐야겠습니다.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혜성이 충돌한 건 아니잖아요. 우선 저는 고기를 줄이려 노력 중이고 옷을 안 사고, 기타 등등의 전반적인 소비들을 참아보고 있어요.
입맛도 없고, 고기도 줄여야 하고, 날은 점점 덥고 습해지는데... 다들 요즘 뭐 먹고 사세요?
p.s. 스티비 무료 요금제는 월 2회 발송이 가능하네요. 이 편지부터는 유료 요금제로 발송됩니다... f.y.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