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이하 <에에올>) 봤다는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 영화는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라서 다들 삼라만상이니, 양자경의 멀티버스니 좋을 대로 부르고 있더라고요. 그것조차 <에에올> 그 자체라서 또 좋았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Be kind’라는 메시지를 남겼어요. 저는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고요. 이 메시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웨이먼드 같은 캐릭터에 마음 깊이 공감하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조이를 조이코패스라고 불렀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저랍니다^^
웨이먼드가 스윗한 남편이자 아빠인 것도 맞고 에블린에게 든든한 삶의 조력자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저는 영원히 웨이먼드처럼 살 수 없을 겁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저에게는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약자성이 있고 또 누군가 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저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웨이먼드나 인사이드 아웃의 조이 같은 캐릭터가 너무 얄미워요. 이렇게 말하면 너무 나쁜가요?
박서련 작가의 소설 <마르타의 일> 주인공 수아, 김신영이 연기하는 백반집 아줌마(”누구야! 누가 제일 바쁜 여섯시 반에!”), <에에올>의 에블린은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게 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블린이라고 웨이먼드처럼 살기 싫었을까? 누구도 그들에게 ‘Be kind’를 강요할 수는 없어… 웨이먼드가 세금 업무나 파티 준비를 도왔다면 에블린도 조금 더 따뜻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거라고, 예수의 제자들이 자기 마실 물 정도는 자기가 떠왔다면 마르타도 좋은 몫을 가질 수 있었을 거라고 저는 굳게 믿어요.
하지만 누구나 ‘Be nice’ 정도는 마음에 품어야겠죠.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정하려고 노력하며 살지만, 그리고 다행히도 그 노력이 저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친절한 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편파적인 친절을 베풀면서 살아요. 주로 어린이와 젊은 여성에게… 안 물어봤다구요? 알겠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깔끔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기는 참 중요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죠. 얼마 전 친구가 “진짜 모든 건 다 사람이 하는 일이구나” 하더라고요. 너무 뻔한 말이지만 또 가끔은 그렇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이죠. 그걸 이해하고 체득하는 일은 정말 어렵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이해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엄마 내 베이글 보라고!’ 하면서 온 우주를 파괴하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