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당일 이사 아저씨들은 이사 전문이 아니라 우체국 쇼핑 택배나 개인 용달 일을 하는 분들이었다. 그런 인력 풀을 확보해놓고 급전 아닌 급이사가 필요한 사람들이 연락하면 그날 쉬는 풀에게 전화를 돌려 집 앞으로 보내는 그런 시스템. 그래서 내 짐들은 이삿짐 박스에 차곡차곡 담기지 못하고 커다란 비닐봉지 여러 개에 와르르 와르르 담겨 강변북로를 건넜다. 마포에 도착해 열어보니 신발이랑 책, 옷이랑 그릇이 한 비닐 안에 와장창 섞여 있었고 덕분에 책과 그릇을 박박 닦아 깨끗하게 새출발할 수 있었다. 가끔은 억텐이라도 올리기 위해 오히려 좋아를 외칠 때가 있는데 이 날은 진심으로 모든 게 오히려 좋았다. 기본적으로 모든 게 웃기고 감사하며 약간 텐션이 올라간 상태였기 때문에 매우 즐거웠다고나 할까.
사실 기분이 좋았던 이유 중 제일 컸던 건 당장 다음날부터 “이사는 잘 했어요?”라는 지나가는 안부 인사에 “그게 말이죠, 이삿짐 센터가 이사 당일에 안 왔다는 얘기 혹시 들어보셨어요?” 하면서 웃긴 에피소드를 풀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그날 아침 예약을 누락한 아저씨 전화를 끊고 크게 웃고 당일 이사를 요청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이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 썰을 풀면서 또 한번 크게 웃은 거였으니까 그때부터 이미 남는 장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생의 모든 순간을 술자리 썰이나 웃긴 에피소드로 소비하고 싶어서 드릉드릉 하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게 또 웃긴 일이다. 이 정도면 징그러운 자기애…
집을 구할 때부터 이사를 하고 어느 정도 집안이 정돈되어 가고 있는 지금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짧은 기간인데 그 동안 너무 많은 호의와 친절과 배려와 다정을 받아서 신기했다. 가장 큰 호의는 역시 크고 작은 액수의 돈을 깎아준 것… 이전 집의 공과금 정산 같은 건 그 집의 여러 문제들을 깔깔 웃고 넘어가준 대가라고 쳐도 지금 집의 월세를 30% 정도 깎은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나와 엄마의 꽁트에 가까운 연기가 작용했는데 무려 노태우 대통령에게 받은 표창장을 화려한 자개 장식장에 고이 전시해두고 성조기와 태극기가 합쳐진 모양의 버클 벨트를 찬 할아버지와 융단 드레스를 실내복으로 입고 계신 할머니가 사시는 곳이니 왠지 야무지지만 성실하고 무던하게 일하는 젊은 청년이며 이 집을 조용히 깔끔하게 갈고닦을 당신의 첫 세입자가 바로 저입니다를 어필하면 월세를 무조건 깎아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계약 날 굳이 엄마를 마포까지 데려갔고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미리 대본을 공유했다. 그러니까 엄마 들어봐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어필하란 말이야. 내가 명문대를 나왔고 지금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저 성실하고 검소하게 열심히 살아가려는 청년이라고 자연스럽게 스몰톡을 빙자한 자랑을 해보라고. 엄마는 자기 그런 거 제일 못한다고 너무 어렵다며 지하철에서 계속 대본을 체크했는데 결국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고 뻣뻣하게 최악의 타이밍에 “제가! 저희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요!” 로 포문을 열어 대본을 줄줄 읊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냉큼 미리 사간 롤케이크 하나를 주인 할아버지한테 안기며 잘 부탁드립니다 했고 부동산 아주머니에게도 또 하나를. 약간 <도둑들>에 나오는 씹던 껌이랑 예니콜처럼 손발 착착 맞는 모녀 사기단(???) 같은 걸 생각했지만 우리는 그냥 얼레벌레 패트와 매트였다. 하지만 세상은 결국 아방수가 이기는 세계관… 엄마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