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수신자들에게 띄워 보내는 짧은 글. 트위터나 인스타만도 못한 일이다. 일단 이 일에는 ‘네트워킹’이 없다. 누군가 읽고 있다는 건 숫자로 알 수 있지만 이 사람이 진짜 읽는지 그냥 클릭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지메일 오류로 열었다고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다(이 오류는 매우 흔하다).
대화라면 상호작용이 기본인데, 그러니까 쿵짝도 맞아야 하고 아 하면 어 해야 하는 것인데, 이 시스템에서는 나의 쿵에도 아에도 침묵만이 가득하다. 가끔 짤막한 답신을 건네는 분들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잠시 ‘등교하면 핸드폰 걷기’ 캠페인을 한 적이 있다(한창 사나울 나이의 여고생들에게 이런 짓을?). 어느날 수업이 끝나고 나서 제출했던 핸드폰을 받아들고, 복도에서 전원을 켰다. 마침 당시 남자친구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그 문자를 확인하는데 복도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선생님이 껄껄 웃더니 나에게 말했다. 누구 문자를 그렇게 행복하게 보냐? 니가 그렇게 쪼개는 거 처음 본다.
말뽄새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내가 싫어하던 선생님이었고 당연히 그 앞에서 ‘그렇게 쪼갠’ 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말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은 그때 그 문자를 확인하던 순간의 행복과 설렘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느낀 바로 그 감정을 누군가 타인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그의 말로 표현해 주석을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답장이 나에게는 그때의 문자만큼이나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길게 적었다.
처음 이 편지를 보냈던 날을 기억한다. 2022년 여름, 남의 침대에 엎드려 웃긴 사진을 찾으면서 낄낄댔다. 개인 블로그인지 새로운 SNS인지 그도 아니면 친구들을 귀찮게 하고 싶었던 건지, 이것조차 하지 않으면 누구도,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나를 쓰는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였는지, 이유도 마음도 내가 이걸로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그냥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독 버튼 만드는 법도 몰라서 DM으로 이메일 주소를 보내라고 했다. (바보에게 손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던 친구들에게 감사를…)
그 후로 발신 주기는 길어지고, 중간에 3개월을 통채로 날린 적도 있고, 스티비 서비스를 유료로 써야 한다는 것에 놀라고(죄송합니다), 예쁜 썸네일도 생기고, 친구들한테만 보내던 것이 정말 나를 모르는 분들께도 전해지고, 인생에도 이런저런 풍파가 닥치고 깔깔 웃었다가 엉엉 울었다가 난리를 쳤지만… 그럼에도 여기까지 왔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우정과 편지는 쌓여간다.
덤덤한 척 이야기하고 있지만 3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엄청나게 징징댔다. 쓸 게 없다, 그만 할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 실제로 아무도 안 시켰는데, 은근슬쩍 그만둬도 아무도 모를 텐데 참 답답한 노릇이다. 참아준 친구들에게 새삼 또 고맙다.
그래서 100번째 편지를 앞두고 고민 많이 했다. 이 기회에 끝낼까? 의미 있는 마일스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좋은 기회. 곰도 백일 동안 마늘하고 쑥만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 마당에, 나도 100개 했으니까 이제 성불해도 되지 않을까? 시작할 때 마지막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이런 고민 안 했을 것이다.
언제나 반복되는 일이다. 뭔가를 시작할 때 고민 없이 몸부터 튀어나가는 것. 그러고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진 출발점을 돌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여기에서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다고 후회처럼 거창한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후회도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뭔가를 좀 생각해보려다가도 3초만에 쿨쿨 잠드는 인간에게는 후회도 숙고도 사치다.
이번에도 단순하게 결정하고 말았다. 그냥 계속 하자고. 내가 믿을 거라고는 지금의 기쁨과 감동과 생기뿐이다. 내일, 다음 주, 내년에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앞으로 더 걸어갈 수 있겠다는, 어쨌든 지금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다는 이 기분과 느낌만 믿고 가는 것이다.
“나 너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헤어질 결심>은 나에게 탕웨이의 아름다움과 비웃음만 남긴 영화지만 저 대사만은 좋았다. 우리 인생의 모든 요소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니까. 명대사란 사실 얼마나 범용적으로 써먹을 수 있느냐에 달린 거 아닐까. 예를 들면 “내가 예림이 때문에 인생을 다시 느껴!”처럼.
나도 얘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이거 없었으면 인생이 조금 더 공허했을 것이다. 행복했던 순간도 많았다.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왔다. 역시 맷돌은 굴리면 굴릴수록 굴러간다(?).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던 말을 이 핑계로 은근슬쩍 해버린 적도 많다. 마음이 아플 때 혼자 쓰면서 툭툭 털었고 기쁠 때 이 마음이 반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썼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여러분의 응원이 없었다면 무엇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왕 뻔뻔한 김에 한번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완결이라는 결승선에 도달한 연재 만화가만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결혼식 정도는 해야 받아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던 그것. 축사를 받아보기로 한 것이다. 소중한 친구들이 흔쾌히 응해주었다. (심지어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사서 ‘축전’을 그려준 친구까지 있다.) 막상 받고 나니 음침하게 혼자만 간직하고 싶어졌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 기쁨과 행복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지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