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강한 음식, 그러니까 남들보다 많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마다 강한 데모그래픽도 있기 마련이다. 이상하게 아기들이 잘 따르는 사람도 있고 아저씨들이 나만 보면 우하하 웃는다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도 희한하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할머니들이다. 우선 탄생과 함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나에게 홀딱 반했다. 두 할머니는 그 뒤로도 평생에 걸친 절대적인 사랑을 쏟아부어주었다. 탄생 이후로는 입이 짧고 조용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며 공부를 잘한다는 특성을 등에 업고 수많은 동네 할머니들의 관심과 어그로를 한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성인이 된 뒤에는 방문하는 식당과 술집마다 주인 할머니들이 내주는 서비스를 받아먹으며 동행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왜 너는 매번 서비스를 받는 거야?") 달걀프라이나 스탭밀을 나누어준 그 할머니들은 우리 외할머니가 나만 보면 하는 말을 그대로 하면서 - 많이 먹고 살 좀 쪄 - 등짝을 때렸다. 이상하게 할머니들이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하면 나도 모르게 힘을 내게 되니 어찌 보면 윈-윈인 셈이다.
더 나이가 들자 할머니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먹는 게 시원찮은 학생을 보는 그녀들의 눈빛이 안쓰러움과 정으로 가득했다면 혼기가 꽉 찬(…) 아가씨를 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아니 대호에 가까웠다. 대부분은 나이가 몇이냐, 남자친구는 있냐, 이러저러한 사람이 있는데 어떠냐 정도의 질문을 던지다 물러났지만 가끔 적극적인 분들은 종이에 연락처를 적어 쥐어주기도 했다. 가장 무서웠던 사냥꾼은 첫 자취를 시작할 때의 부동산 사장님이었다. 회사 앞 작은 부동산의 대표였던 그녀는 같은 부동산을 찾은 우리 회사의 남자 직원에게 그 아가씨를 꼬옥 잡으라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당시 내 번호가 과연 또 누구에게 전해졌을지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밖에도 내가 만난 집 주인 할머니들, 이웃집 할머니들은 월세도 뭉텅 깎아주고 직접 부친 모듬전과 과일을 선물해주고 새 화장품을 덥석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당신들의 손녀라도 된다는 듯이. 하지만 내가 그보다 좋아하는 것은 그녀들이 내 어깨를 감싸는 순간, 한 손으로는 팔뚝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등을 쓸어주는 손길, 갑작스럽게 수영복을 쑥 끌어올려 입혀주는(ㅋㅋ) 요청한 적 없는 도움 같은 것들이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을 알아본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번도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쩌다 어린 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게 되면 나와 그들은 첫 인사만 나눈 채 영원히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한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다르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한 걸음 앞으로 전진,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단박에 좁힌다.
할머니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이야기를 잘 들어드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단 할머니들이 입을 열면 나는 무조건 경청한다. 또래가 말하면 깔깔대며 함께 대화를 나누고 아저씨가 말하면 대체로 딴 생각을 하며 무시하지만 할머니가 말하면 한 마디라도 놓칠새라 귀를 기울인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무조건 재미있고 또 들을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할머니들 특유의 사람 보는 눈으로 나의 현모양처 사주를 꿰뚫어 본 것일까? 참해 보이는 겉모습에서는 많이 벗어났지만 그녀들은 나의 팔자를 다 알아본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웃긴 이유로 남을 설득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할머니를 좋아하기 때문일 테다. 아이들은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우리 모두는 누가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눈치 채지 않던가. 하물며 나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들 눈에 그게 안 보일 리 없다.
나는 할머니들을 좋아한다. 누가 할머니를 괴롭히는 꼴을 보면 갑자기 머리 끝까지 화가 나면서 눈앞이 캄캄해진다. 평소에는 남들처럼 위험을 피하고 상식적인 선에서 살아가지만 할머니가 얽힌 사건이 벌어지면 이성을 잃고 만다. 자칫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피해자가 나라면 ‘아휴 미친놈 더러워서 피한다’ 하고 말겠지만 어느 할머니가 피해를 입고 있다면 정신을 놓는 것이다.
한번은 좁은 골목길에서 어떤 차가 느리게 걷는 할머니를 칠 듯이 바짝 따라붙으며 동네가 떠나가라 클랙션을 울리는 모습을 봤다.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느린 걸음을 재촉했는데 그러다 꼭 넘어질 것만 같고, 미친놈은 계속 3cm씩 전진하며 할머니를 위협하고… 눈이 돌아버린 나는 당장 달려가서 할머니를 감싸고 차 보닛을 내리쳤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운전자 아저씨와 사이 좋게 욕설을 주고받았다. 100kg이 넘는 러시아 격투기 선수도 아니면서 왜 그랬을까. 그 운전자가 진짜 미친놈이라서 나를 치고 지나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지만 그게 우리 외할머니였다면 나는 그 차를 밟고 올라가서 전면 유리를 발로 찼을 것이다. 그러니까 운이 좋았던 건 내가 아니라 그 운전자 녀석이다. 유추할 수 있듯 나의 '할머니 사랑'은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의 확장판이다. 언젠가부터 소원을 빌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할머니의 건강과 장수만을 빌고 있는 나를 본다.
사랑은 계속해서 확장된다. 푸드코트에서 혼자 밥을 먹는 할머니를 보면 물을 떠다 드린다. 키오스크 앞에서 망설이는 할머니를 보면 대신 주문을 한다.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면 무조건 받고 (”두 장 주셔도 돼요”) 분리수거함을 뒤지는 할머니 옆에서 같이 캔을 밟고 지하철 계단에서는 쇼핑용 카트를 든다. 어린이를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할머니 대하듯 했다면 아마 진작에 천국에 갔을 것이다(?). 나의 친절은 할머니들에게만 편파적으로 작용한다.
고백하자면 이제 할머니들은 예전만큼 나를 예뻐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17살로도 보이고 50살로도 보이는 기묘한 모습으로 그녀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아가씨인지 학생인지 새댁인지 아줌마인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사람을 본인들의 분류에 쏙 집어넣지 못해서일까? 할머니들은 나에게 옛날처럼 살갑지 않다. 그게 아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여전히 그녀들을 좋아하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종종 ‘귀여운 할머니 되기’가 꿈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할머니 사랑단으로서 나는 그것이 일종의 노인 혐오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그냥 좋은 존재, 굳이 귀여울 필요 없는 존재다. 할머니가 왜 귀엽기까지 해야 할까. 우리는 그저 다가오는 늙음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필연적으로 딸려올 노화와 아픔과 속 좁음과 깜빡깜빡과 기타 등등을 감내해야 할 뿐이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링크)를 읽어보자.) 그리고 진정한 할머니 사랑단이라면 그런 그녀들의 특징조차 사랑하자.
요즘은 수영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할머니들을 본다. 그녀들의 대화를 엿들으면 어디에서도 알 수 없는 ‘생생정보’를 알 수 있다. 가끔 나에게까지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날이면 그날은 하루 종일 웃기고 기분이 좋다. 할머니들의 관심사, 고민거리, 자랑, 요즘 제철인 식재료와 그것을 어디서 사고 어떻게 보관하는지 듣는 건 정말 재미난 일이다. 단체로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할머니들이 영어로 인사를 주고받을 땐 너무 귀여워서 혼자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빨개졌다. 이 구청에 수영장이 생겼을 때부터 이곳에 다녔을 것 같은 그녀들을 관찰하며,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려면 20년은 더 수영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