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지만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확실하다. 봄이 제일 싫다. 꾸준히 싫어했다. 한번도 좋아한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참 좋아하는데 이상한 일이다. 꽃도 좋아하고, 소풍도 좋고, 새학기도, 가벼운 옷차림도 산책도 연두색도 경쾌한 봄 노래도 좋다. 도무지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 왜 이렇게 싫은 걸까. 민음사 김민경 편집자가 그랬다. “대충 알고 좋아하고 다 알고 싫어하자”고. 꼭 이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따지고 드는 건 음침하고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지금은 봄의 딱 한가운데. 봄이 왜 싫은지 이야기하기에 이보다 좋은 때가 있을까.
아무래도 봄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날씨다. 3월부터 슬금슬금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보다 오르는 기온과 미미한 봄 기운에 민감한 사람이다. 아 이거 봄 냄새인데. 하 바람이 슬슬 따뜻해진 것 같은데. 남들은 아직 추워 죽겠는데 무슨 소리냐며 타박하지만 나는 안다. 겨울이 힘을 잃는 그 순간을 봄은 얄미울 만큼 재빠르게 파고든다. 그러다 꽃샘추위니 하는 말과 함께 남들도 다 봄 기운을 느끼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본격적인 전전긍긍이 시작된다. 헐 다음주부터 최저 기온이 영상이네. 이러면 안 되는데. 4월이면 급기야 꽃이 피기 시작한다. 목련이 이만큼 아름답지 않았다면 이 절망감을 가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맞다. 내가 특히 싫어하는 건 봄의 한복판인 4월이다.
대학 시절 자주 갔던 학교 앞 카페에는 방명록이 있었다. 어느 4월, 거기에 사월은 잔인한 달 어쩌고 하면서 하소연을 끄적였다. 며칠 뒤에 다시 가서 보니 누군가 댓글을 달아 두었다. “ㄴRe: ??? 제발 정신 좀 차려봐…” 그게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맞다. 4월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달이다. 어딘지 모르게 붕 뜬, 공기가 좋지 않은, 숨 쉬기 답답하고 더웠다 추웠다 하는, 두꺼운 옷을 입고 땀 흘리는 게 싫어서 얇은 옷을 입으면 냅다 추워지는 시기. 그러니까 4월 전체가 나에게는 거대한 PMS나 다름없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끔찍하다.
4월을 싫어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보편적인 정서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 로 시작하는 시도 있고 <잔인한 사월>이라는 노래도 있다. 봄은 유난히 기온도 기압도 널뛰는 계절이라 우울감에 영향을 주고 정신병이 도지기 쉬운 시기라는데 그래서일까? 차라리 그래서였으면 좋겠다.
노는 걸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선을 다해 가장 효율적으로 즐겁게 가능한 백 퍼센트의 효용을 끌어내면서 노는 걸 좋아한다. 그 과정 자체가 재밌다. 그래서 모든 계절을 멋지게 즐길 방법을 백 가지씩은 알고 있는데, 특히 봄을 즐기는 일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왜냐? 봄에 가장 기분이 더러워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각종 봄 즐기기 ‘꿀팁’과 봄 꽃과 소풍, 연두색 잎사귀와 봄 노래들이 없었다면 봄을 지금 정도로 참아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재앙이었을지 감도 안 온다.
봄, 특히 4월을 제대로 나려면 나 자신의 비위를 엄청나게 섬세하게 맞춰줘야 한다. 남의 컨디션 파악하고 눈치 보고 비위 맞추기라면 자신 있지만 이런 나라도 상대가 미친놈처럼 예민하게 변덕을 부려대면 쉽지 않다.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강적, 바로 나다. 4월은 온갖 예외 처리로 가득하다. 약속을 했다가도 취소하고 라면 물을 끓이다가도 냅다 햄버거를 시켜준다. 남들이 가죽자켓을 입어도 내가 더우면 민소매를 입고 사람들이 반팔을 입든 말든 내가 추우면 두꺼운 후드를 뒤집어쓴다.
4월에는, 이때만큼은 절대 나 자신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나 자신에게 싸움을 걸고 그 싸움에서 이기는 걸 지상 목표로 삼는 나지만 4월에는 다르다. 나 자신과 싸움을 왜 하지? 상대도 나 자신인 것을… 집안일을 마친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 본다. 우리 이제 좀 누워서 쉴까? 스르르 침대에 엎어지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아니? 나 카페 가서 커피 먹고 싶은데? 으응 그럼 가야지…
친구였다면 절대 안 들어줄 변덕에도 입 다물고 따른다.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이유는 모르겠는데 기분이 너무 안 좋다’며 하루 종일 입을 내밀고 있을 테니까. 최악의 경우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난다’는 둥 난리를 칠 것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느니 지금 당장 맛있는 커피를 먹여주는 편이 낫다.
나는 4월에 태어났는데 산부인과에서 집으로 오자마자 황달인지에 걸려서 다시 병원에 입원해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고 한다. 엄마는 이때 너무 울어서 내가 서른이 넘을 때까지 4월만 되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요새는 이런 말 안 하네… 사랑이 식은 건가?) 내가 4월을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4월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의 시작을 봄의 한가운데 4월에 했으니 앞으로 영원히 이때를 욕하고 저주하는 건 아닐지.
아무리 어떤 계절이 싫어도 앞으로 이 계절을 100번도 못 즐긴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소중하게 느껴질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즉시 아닌데? 라고 (속으로) 반박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사랑스럽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연두빛 새순을 보면서, 따뜻한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비를 맞으면서, 악뮤의 새 앨범을 BGM 삼아 어디론가 신나게 걸어가는 어린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봄 진짜 싫다, 앞으로 나한테 남은 봄이 단 3번뿐이라고 해도 싫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