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요즘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초딩처럼 살아도 되는 것일까 걱정될 만큼 신난다. 아니, 이건 초등학생에게 모욕적인 발언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우쭐우쭐 투스텝으로 걷다가 깜짝 놀라 멈출 만큼 즐겁다. 어디서 보니 나는 너무 생각이 없어서 거지 되기 딱 좋은 사주라던데 맞는 말 같다. 자기 전에 조금쯤 사색이나 명상을 하고 싶어도 3초 정도 지나면 잠들어버리는데 어떻게 생각이란 걸 할까. 요즘에는 자기 전 머릿속으로 영남사물 가락을 복습하고 싶은데 자꾸 잠이 들어서 쉽지 않다.
평생 할 생각을 24살까지 몰아서 한 거 같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놀기 위해 살아가도 되는 건가 싶다고 친구, 아니 우리 팀 상쇠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아주 멋진 답을 들었다. 24년 동안이나 생각했으니까 그 뒤로 24년은 생각 쉬고, 49살부터 다시 생각이라는 것을 시작하라고… 정말 현명한 생각이다. 역시 가락을 이끄는, 사물을 지배하는 상쇠라면 이러한 현명함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까지 외주를 주어야 하는 나는 정말 생각을 멈춘 거구나 깨달았다.
이 행복한 장구 생활에 조그만 문제가 하나 있다. 사물놀이는 말 그대로 사물, 꽹과리, 북, 장구, 징 넷이서 해야 하는데 우리는 셋이다. 연습이 아무리 즐거워도 징 소리가 없으니 어딘가 허전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혹시 사물놀이 해본 적 있냐고 묻고 있다. 징 겸 부쇠로 영입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사물놀이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짝쇠 - 두 꽹과리가 장단을 주고받는 일종의 듀엣 퍼포먼스 부분으로, 징을 치던 사람이 잠시 꽹과리를 들고 연주한다 - 니까 징 겸 부쇠가 꼭 있어야겠지. 분명 회사 안의 누군가 한 사람 정도는 20년 전 풍물 동아리에서 느꼈던 합주의 기쁨을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냅다 낚아채서 같이 수업 듣자고 해야지. 벌써 너무 기대된다.
그리고 사실 큰 꿈은 또 따로 있다. 스승님한테 열심히 수업 듣고 친해져서 나중에는 진짜 풍물 팀에 우리를 소개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어딘가에 있을 30명짜리 풍물패에 은근슬쩍 끼어들어서 판굿을 해야지. 언젠가는 그날이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꿈도 많고 믿음의 영역도 많은 느낌이지만 상관 없다. 언젠가 꼭 다시 장구를 칠 거라고 믿었는데 지금 진짜로 하고 있는 것처럼 판굿의 꿈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종류의 믿음, 그러니까 내가 의지로 해낼 수 있는 일에 대한 믿음은 전혀 막연하지 않고 그래서 힘차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난 진짜 진짜로 믿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