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씹도. 차가운 씹새끼들의 도시. 수많은 서울의 별명 중 이렇게 잘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나에게 서울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공간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그리고 차씹도… 물론 기준은 나 좋을 대로이고,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보자면 놀고먹을 때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였다가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된 뒤로 대체로 차씹도다.
30년 넘게 서울에 살았지만 한번도 이 도시에 질린 적 없다. 지겨울 틈이 없이 웃긴 사람이 이상형이라면 구석구석 지루하지 않은 서울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저마다의 ‘나의 동네’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나의 서울’이 있다. 나의 서울은 매우 협소하고 빈틈도 많다.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라는 선과 곳곳의 술집이라는 점으로 연결되어 있는 나의 서울. 이곳의 모든 지역에 빠삭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쌓인 시간 때문에 익숙해지고 만 친구.
약속 장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혹은 택시에서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창밖에는 모르는 길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몇 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다. 지겹게 돌아다닌 곳, 꺾어져 들어갔던 골목들, 거기에서 들은 음악과 마신 술과 내뱉은 말. 이 다음에는 터널이 나오고 그 터널을 지나면 어떤 건물이 펼쳐진다는 안락한 예상.
내 마음대로 시간과 돈을 운용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사는 동네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어른이 된 뒤에도 가던 곳만 가고 놀던 친구들하고만 노느라 ‘우물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건 자발적 선택이었다는 게 차이점이겠다. 대학 때 한 교수님이 사람을 소개해주겠다며 홍대 합정 쪽에 자주 가는 가게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너무 당당하게 “저는 그 동네를 모르는데요?” 했다. 아니, 대학생이 홍대가 아니면 대체 어디에서 논다는 말이니? 교수님은 당황했지만 나는 황당했다. 어차피 여기서 먹으나 홍대까지 가서 먹으나 똑같은 소주 아닌가?
그 뒤로 사는 곳과 생활 반경이 몇 번이고 바뀌었다. 맨날 놀던 친구들 말고 새로운 배경을 가진 나와 다른 사람들과 (반강제로) 친해지고 어울리게 되면서 나의 서울도 넓어졌다. 점진적으로 넓어지는 게 아니라 한번에 한 뭉텅이씩 확. 작은 모래 언덕을 쌓고 나뭇가지를 꽂은 뒤 땅따먹기를 하는 것처럼.
몇 년 전에는 강남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래도 3년은 넘게 그 동네에서 살고 일도 했는데 살 때도 싫었고 끝까지 정이 안 붙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그 동네는 사람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다. 밤중에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큰길 한복판에 갑자기 엄청나게 큰 24시간 설렁탕 집이 있고, 거기에 가면 밤 12시에도 사람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 웨딩홀이나 대형 병원, 호텔이 있다가 갑자기 대형 카페가 있고, 새벽 2시인데도 주차장이 빽빽하고 들어가면 사람이 많다.
미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모두가 차를 가지고 다니는, 그래서 가게도 집들도 인간도 띄엄띄엄 위치한 미국 어느 근교의 동네 같다. 갑자기 내가 엄청나게 큰 도시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행이 있어도 쓸쓸할 때가 있었다. 물론 같은 서울 안에서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를까. 그때는 독립도 처음이고 강남도 생소하고 이전까지의 생활과는 너무 많은 것, 거의 모든 것들이 달라졌었다. 하필 그럴 때 만난 서울이 강남이라는 동네여서 더 싫었을 것이다. 이때가 처음으로 서울을 차씹도라고 인지한 시기다.
이런 식으로 넓어진 나의 서울은, 그럼에도 당연히 선명한 곳보다 빈 곳이 훨씬 많다. 하지만 이 빈틈 덕분에 앞으로도 쭉 서울을 사랑할 거라고 장담하게 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의 전부를 알 수는 없고, 누군가의 전부를 안다는 게 꼭 더 많은 사랑을 보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오히려, 그래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게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