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스스로 생각해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의, 어디 가서 지지 않을 정도의 예민함을 타고 났다. 어느 정도였냐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잠자리 옆에는 늘 플라스틱 바가지나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잘 자다가 별안간 깨서 토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심기가 불편해도 바로 몸이 아팠다. 그러면 그 ‘심기 불편’의 기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어린 시절 나는 상의를 겹쳐 입을 때 겉옷 소매를 쑥 당기면 안에 입은 옷이 팔꿈치 쪽으로 딸려 올라가는 느낌을 정말 싫어했다. 엄마가 옷을 입혀주어야 할 만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손가락으로 안에 입은 옷 소매를 꽉 잡고 있으면 괜찮은데 그럴 틈도 주지 않고 후다닥 겉옷을 입히면 하루 종일 뚱하니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바다에 놀러가서 발가락에 모래가 달라붙거나, 찰흙놀이를 하는데 끈적한 고무찰흙이 손가락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그냥 그 상태로 굳었다. 차라리 울었으면 누군가 와서 도와줬을 텐데 큰 소리를 내면 더 힘들어지고 더 예민해질 걸 알아서 딱히 어필도 못했다. 혼자 이 느낌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한지 영원히 곱씹으면서 앉아 있었던 것이다. 경험상 화를 내기 시작하면 점점 더 분노가 치솟듯이 이런 류의 불쾌함도 곱씹을수록 커진다.
촉감뿐만 아니라 소리에도 예민했다. 어린이들은 당연히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우당탕 뛰어다니면서 논다. 똑같이 어린이인 주제에 큰 소리를 내기는커녕 남들이 내는 소음도 참지 못하는 나는 늘 인상을 찌푸린 채 친구들의 난장판 한가운데 앉아 있고는 했다. 그 상황을 적당히 - 엄마가 왜 친구들하고 안 노냐고 물어보지 않을 정도로 - 견디다가 슬그머니 책장 앞으로 가거나 아줌마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틈새로 끼어들었다. 언젠가는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놀았는데, 그게 너무 시끄러워서 집에서 부업을 하시던 옆집 현아 아줌마네로 혼자 도망친 적도 있다.
사실 소리에는 아직도 예민해서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대번에 소음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한동안은 노래 소리를 견디기가 힘든데 노래를 듣고는 싶어서 마음 속으로만 노래를 재생하고는 했다. 요즘도 누군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거나 소리를 지르면 벌떡 일어나서 냅다 한 대 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소리는 귀로 들어와서 단번에 뇌 어딘가를 찌른다. 노래방을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지 모르겠고 클럽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공연장은 컨디션이 좋을 때만 간다.
어린 나를 생각하면 한심하고 불쌍하다. 적극적으로 그 불편함들을 해소하면 되는데 (예를 들면 엄마한테 옷을 다시 입혀달라고 하거나, 빨리 발의 모래를 털고 싶다고 말하거나, 나는 시끄러운 친구들하고 안 놀겠다고 하면 될 텐데) 그런 행동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불쾌감을 곱씹고 있었으니 몸이 아플 만도 했을 것이다. 주변 사람도 피곤했겠지만 제일 피곤한 건 나 자신이었다. 십 대가 된 뒤로는 이 성격이 싫고 피곤해서 무던해지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예민한 나를 견뎌내기에는 너무 예민했던 십 대 시절이었다.
나름의 치료 방식은 그야말로 단순 무식했다. 소리에 예민한 게 싫어서 볼륨을 끝까지 올리고 이어폰으로 후바스탱크와 RHCP, AC/DC 같은 음악을 들었다(그때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시끄러운 음악들이었다). 급기야 풍물 동아리에 들어갔다. 시끄러운 소리를 버티고 그 소리를 뚫을 만큼 더 큰 소리를 지르는 법까지 익혔으니 잘한 일이다.
아무거나 덥석 만지고, 땀방울이 간지럽게 흘러내려도 닦지 않고 버티고, 옷을 입을 때 안에 입은 티셔츠가 팔꿈치까지 올라가도록 일부러 소매 끝을 잡지 않았다. 불쾌한 느낌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게 어렵다면 사실 이건 하나도 불쾌한 느낌이 아니고 그냥 촉감일 뿐이라고 되뇌었다. 이 정도면 스스로를 고문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고문을 겪을 만큼 예민하게 사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도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내 성격을 묘사할 때 무던하다, 안정적이다, 덤덤하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많이 편안해졌다. HSP 자가 테스트 같은 것을 해봐도 평균 이하의 결과가 나온다. 어린 내가 했다면 모든 항목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눈물을 흘렸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