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뭘까요? 사실 종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종교’ 하면 ‘인민의 아편’ 밖에 안 떠올라요. 주위에 종교인들이 있긴 있었겠지만 같이 종교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신경 안 썼고요. 어릴 때 교회 달란트 시장 한번씩은 놀러가 본다던데 저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평균보다 더 종교와 멀었을지도 모르죠.
이렇게 전반적으로는 무관심한 편이지만,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종교란 걸 받아들이는 순간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저의 마음으로는 다 상상할 수 없는 아주 거대한 벽, 혹은 아주 깊은 해자를 떠올리게 돼요. 그들도 자신의 마음으로는 다 감당할 수 없는 아주 커다란 무언가를 맞닥뜨린 걸까요? 그래서 종교에 마음을 의탁한 것일지도 모르죠.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자식 둘을 혼자 키운 여자가 한 명 있어요. 시장에서 장사도 하고 남의 집에서 파출부도 하고 여러모로 갖은 애를 썼겠죠. 남편은 어디 가서 객사했다나? 이북 출신이었다니 다시 북으로 올라갔을지도 모르겠고요. 아무튼 인고의 세월을 지나 공부 잘한 장남도, 성질을 못 이기고 고등학교를 뛰쳐나와 검정고시를 친 차남도 명문대에 입학합니다. 그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고, 장남이 끄는 리어카에 타고 시장을 돌면서 이웃 좌판 아주머니들, 상인들에게 온갖 축하를 다 받았다고 그 여자가 말하더군요. 이제 행복해질 거야, 생각했을까요? 행복보다는 안도가 더 크지 않았을까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그리고 곧 차남이 감옥에 가게 되는데요. 그로부터 몇 년 뒤 방한한 교황 덕분에 차남은 특사로 풀려납니다.
그 여자가 언제부터 카타리나라는 이름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어느날, 번듯한 본당 하나 없는 좁고 낮은 어떤 공간에서 울며 기도했을 그 여자의 모습만큼은 생생하게 떠올려볼 수 있어요. 제가 기억하는 한 카타리나는 한번도 제사상에 절을 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명절이 되면 두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을 데리고 아침 미사에 참석했죠. 둘째 며느리인 아녜스는 시어머니의 권유로 다니기 시작한 성당 덕분에 아직도 친구가 많고, 둘째 손주인 스텔라는 할머니가 ‘죽기 전에 너희 세례받는 거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한 덕분에 8년째 냉담자로 삽니다. 저는 카타리나가 종교를 갖게 된 그 순간이 어땠을지 종종 생각합니다. 물론 슬펐겠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했기를 바라면서, 할머니가 주신 못생긴 묵주반지를 껴보곤 해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청년이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군대를 제대했는데 집도 절도 능력도 꿈도 의지도 없죠. 요즘 세상에 그런 청년은 너무너무 많지만 그땐 그런 젊은이들을 조금 다르게 취급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IMF 시기였고, 인터넷이 뭔지도 잘 모르던 때였으니까요. 그 청년은 한동안 둘째 누나네 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방 두 개 짜리 낡고 좁은 시영 아파트의 문간방을 열면 거기가 세상의 전부였어요. 낮에도 컴컴하고 ‘노총각 냄새’가 나고 방 안에서 피운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낮에도 밤에도 바닥엔 이불이 깔려 있는 곳. 방 안에는 PC가 한 대 있었는데 그는 그걸로 스타크래프트도 하고 마작도 했습니다. 누나와 매형이 일하러 나간 틈을 타 9살짜리 조카에게도 스타랑 마작을 가르쳤죠.
그러다 다단계를 시작했어요. 그 방에 쌓여 있던 <다단계와 네트워킹 판매의 차이> 같은 책, 거기에 나오는 피라미드 구조 그림, 다이아몬드니 사파이어니 하는 보석 이름들이 참 강렬했는데요. 방구석에 물건들이 쌓였다가 사라지고 또 쌓였다가 사라지고 그 방에 담겨 있던 사람도 나갔다 돌아오고 또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어느날은 두 달 동안 집을 나갔다 돌아왔어요. 둘째 누나와 백발의 모친이 울며불며 그 청년의 등짝을 때렸지만 역시 소용없었죠. 그리고는 20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아요.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 청년은 20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어느 종교 단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결혼도 했어요(그래서 20년 만에 연락했대요). 생각해보니 그때 그 골방 안에는 하늘이 열리고… 우주의 가을이 오고… 어쩌고 하는 종교서도 있었는데 9살의 눈으로 이해하기엔 조금 힘들었겠죠. 그렇게 마음 약하고 착하고 순했던, 하지만 꿈도 의지도 없던 청년은 젊음과 남은 평생을 종교에 바쳤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사고로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부모는 그 사고가 자신들의 탓이라고 생각했고, 불교에 귀의했어요. 그래서 그 집엔 늘 남은 자식과 그 할머니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그 가족은 이민을 갔습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웃들과 인사를 나눌 때 그 부부를 봤어요. 아주 어릴 때의 일인데… 그 사람들의 몸은 분명 여기에 있는데 정신은 여기에 있는 것 같지 않고, 분명 아주 투명한 얼굴로 웃고 있는데 울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팔에 걸린 염주가 그 사람들을 지켜주었을까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부부가 떠올라요. 누구보다 신을 원망하고 또 그러면서도 신을 찾았던 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인간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온전한 존재가 되려는 힘이 강해지기 때문에, 삶이 부서진 어떤 사람에게 ‘예술적 자극’은 곧 ‘치유적 자극’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아름다움(예술)은 인간을 ‘해결’하는 사랑의 작업이 되고, 그렇게 치유되면서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분쟁’과 다시 맞설 힘을 얻게 된다.” 어떤 의미로든 삶이 부서진 저 이야기 속 사람들에게 종교는 ‘치유적 자극’을 주었을까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종교를 갖게 된다면, 그제야 알게 되겠죠.
* 인용은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진은영, 2022)에 덧붙은 신형철의 해설 <사랑과 하나인 것들: 저항, 치유, 예술> 중. 첫 문장은 정혜신, 진은영의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2015)에서 저자 신형철이 인용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