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슬쩍 하루 늦은 지난 주말에는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부산행 KTX에서 ‘올해의 OO’을 꼽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프린트를 못해서 손수 질문지 4장을 적어온 - 수제 복사 - 친구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올해의 리스트는 제법 심오해서 골머리를 조금 앓았습니다. 올해의 대화, 올해의 영감 같은 거 생각하고 사는 분 계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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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ktx에서 다과와 함께 진행된 2025 연말결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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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리스트와 일기장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각종 티켓을 참고해서 시작하겠습니다. 미내레터 시상식, 2025년 올해의 이것저것. 올해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잘 놀고 다녔거든요. 이렇게 열심히 놀 생각은 없었는데 책도 너무 많이 읽고 여행도 과하게 많이 다니고 전시, 공연, 영화관을 엄청나게 다니고 당연히 술도 많이 마시고 그 밖에도 끊임없이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마음 먹고 세어보니 매달 최소 한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최소 한 번은 전시회에 가고, 또 공연도 매월 보고, 심지어 여행까지 한 달에 한 번은 다녔네요. 이 정도면 회사 안 다니는 사람처럼 놀았다. 그래서 최고의 무언가를 꼽기보다는 훨씬 느슨하게, 하지만 치열한 엄선을 거쳐,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을 공유할게요.
- 올해의 영화: 책을 추천할 때는 항상 ‘재미’를 가장 큰 기준으로 놓고는 합니다. 그런데 영화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기준을 적용하게 돼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저의 영화 추천 기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영화는 <3학년 2학기>예요. 아직 OTT에는 올라오지 않았고 극장에서는 내려가서, 언젠가 볼 수 있는 채널이 생기면 꼭 다시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재미있고 ‘쩌는’ 영화들을 많이 봐도 결국 <3학년 2학기> 같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빠져나오면서는 ‘역시 영화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올해의 책: 북적북적에 따르면 올해 88권의 책을 읽었네요. 중도포기한 몇 권을 빼도 꽤 많이 본 것 같죠. 그만큼 치열했던 올해의 책 선정! 차마 한 권만 꼽기는 어려워서 여럿입니다. 소설을 제일 많이 읽었을 텐데 여기에는 한 권도 없다는 점, 에세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인데 이 책들은 전부 (넓은 의미에서) 에세이라는 점이 약간 어이없는 포인트입니다. 전부 여자 작가의 책이라는 건 놀랍지도 않네요.
- 하은빈, <우는 나와 우는 우는>
- 홍한별,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작은 미덕들>
- 희정, <죽은 다음>
전시나 공연과 달리 영화하고 책은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2025년의 리스트(링크)를 공유합니다. 아직 다 적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업데이트 되리라 기대해주세요. (겠냐? 라는 말은… 가슴 아프니까 하지 말기.)
- 올해의 공연: 오로지 이자람 공연을 보기 위해 운전한 시간이, 과장 조금 보태 10시간은 넘을 겁니다. <눈, 눈, 눈>은 기회가 되신다면, 아니 조금 무리해서라도 꼭 한번 경험해보시기를 권하는 공연이에요. 비엔나에서 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도 너무 좋았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정량 평가가 가능한 역량의 차이라고 느꼈는데요. <눈, 눈, 눈>은 그야말로 심장에 그대로 와 꽂히는 신비의 영역이었습니다. 오히려 <프리마 파씨>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프리마 파씨>도 이자람 배우 버전으로 한번 더 볼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를 해봅니다.
- 이런 링크밖에 없네요. 이 공연은 꼭 직접 가서 보셔야 해요! 제발(?).
- 올해의 음악: 아리아나 그란데, 신시아 에리보 - What is this feeling. 영화 위키드 2편의 개봉과 뮤지컬 위키드 투어 공연을 봤기 때문일까요? 올해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이거라고 하네요. 이런 넘버들은 듣기만 해도 즐겁고 힘이 나고 흥겨워집니다. 반면 트와이스 - Feel special은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올해 두 번째로 많이 들은 노래, 그리고 아마 작년에도 순위권을 차지했을 노래입니다. 10년 전에는 다시 만난 세계를 그렇게나 많이 들었는데 올해는 집회에서 너무 많이 들어서 조금 질렸나봐요. 그 자리를 필 스페셜이 채웁니다.
- 올해의 TV 쇼: 냉장고를 부탁해 시즌 2. 솔직히 흑백요리사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게스트가 너무 마음에 안 드는 편을 빼고는 전 편을 다 챙겨봤고요. 이제 안정환이 무슨 말만 하면 제대로 듣지도 않고 무조건 웃음이 터지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제 유튜브 알고리즘은 세 가지 키워드로 돌아갑니다. 피지컬 아시아(몽골, 홍범석으로 뻗어나감), 수영(무쇠소녀단, 최민호로 뻗어나감), 그리고 냉장고를 부탁해(김풍을 거쳐 이종범, 김민경 편집자로 뻗어나감).
- 올해의 전시: <김환기: 뉴욕시대>. 생각해보니 강릉 솔올미술관 개관전을 시작으로 국현미 청주와 서울관에서도 김환기 작품을 봤더라고요. 물론 김환기는 언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친숙한 전시이고 그래서 감사하지만… ‘진짜 좋다’고 생각하게 된 건 올해가 처음인 듯해서 새삼 추천해봅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건 일단 삐딱하게 생각하고 봤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남들이 좋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내가 아직 못 깨달은 거겠지, 라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약간 늦된 것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제법 철이 들었지요.
- 올해의 만화: <아이실드21>와 <골든카무이>와 둘 중에 엄청나게 고민했지만 결국 <아이실드21>의 승리입니다. 결국 ‘소년만화’로 돌아가고 마는 취향이기 때문일까요? 그냥 히루마 요이치 선배님과 백년해로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요?
- 올해의 인물: 최현숙. 친구들과의 2025 어워즈에서 ‘올해의 영감’으로 꼽았던 이반지하의 이면지 최현숙 편 링크를 남겨둡니다. (1편, 2편을 다 보면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라 강권은 못하겠고요, 시간 많으실 때 한번 보세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생한테 끌려가느라 내 이정표를 자꾸 잊을 때 고개를 들어 바라볼 사람이 있다는 게 - 물론 최현숙은 제가 알기 전부터 언제나 존재했던 사람이지만 - 너무 든든하고 행복하고 하지만 긴장되는 마음으로 허리를 꼿꼿하게 펴게 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야죠.
- 문장: 이어서 올해의 문장을 소개하겠습니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의 책 제목입니다. 아직 사놓고 읽지는 못했지만 저 문장만 봐도 마음이 뜨끈~해지는 게 국밥 한 그릇 먹은 듯(소주 추가) 든든~하고 강해지는 기분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 가사 두 개가 있는데요. 하나는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꽃다지 - 주문)이고 하나는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소녀시대 - 다시 만난 세계)입니다. 늘 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사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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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공간: 녹두호프. 너무 슬퍼서 또 말을 못 하겠어요. 가끔 졸업한 대학 캠퍼스에 산책을 하러 가면 그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과방이 있던 건물이 철거되었다 다시 올라오고 들러보려던 구내식당 자리가 통채로 허허벌판이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녹두호프의 상실은 그 헛헛함과는 다른, 그곳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싶은 아득함을 줍니다. 1년은 더 지나야 좀 나아질 것 같아요.
- 올해의 여행: 대만 타이베이. 겨우 두 번째 대만 여행이었지만 처음 다녀왔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으니 이 정도 호들갑은 일도 아니겠죠? 이번에는 정말로 푹 빠져서, 돌아오자마자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HSK 3급을 땄으니 내년에는 공부를 재개해서 5급에 도전해볼게요.
- 올해의 장소(공간하고 장소는 다른 거 아시죠😁): 마포구청 청소년센터 유스나루. 6호선 마포구청역은 위아래로 길게 생겼어요. 그래서 집과 회사 방향인 출구로만 다니고 마포구청 쪽 출구로는 지나다닐 일이 없었는데요. 올해 수영을 시작하고는 이곳에 주 3회 드나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도 어두웠던 등잔 밑을 밝히는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또 잠 많기로는 어지간한 사람 다 때려눕힐 제가 ‘아침 수영’이라는, 평생 넘보지도 않았던 일을 하고 있는 놀라운 장소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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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제 생활반경이 얼마나 좁았냐면, 또 다른 올해의 장소로 카페 하흘을 꼽을 만큼입니다. 올해의 장소라기에는 12월에 처음 방문한 곳이라 조금 머쓱하네요. 마포구 특: 카페 많음. 하지만 타고난 게으름뱅이인 저는 옆옆 골목에 있는 카페도 ‘아 씁 조금 먼데?’ 라며 발길을 옮기기를 저어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저에게 드디어, 절대 거리 핑계를 댈 수 없을 만큼 가까운 카페가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아침 7시에 열어서 출근길에 여유롭게 커피를 살 수도 있어요. (누가 보면 7시에 출근하는 줄 알겠음) 지금 이 레터도 하흘에서 쓰고 있습니다. 오래 잘 되시기를!
- 올해의 목표 점검: 기록하기, 폰 바꾸기, 헬스장 가보기 세 개가 저의 2025년 목표였습니다. 잘 이뤘는지 살펴볼까요. 우선 기록하기. 11월 말쯤 잊고 있던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4월까지만 열심히 쓰고 5월부터는 텅 비어 있더라고요. 12월 한 달은 또 열심히 썼으니 5/12라는 놀라운 달성율입니다. 3월을 넘긴 적이 거의 없으니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에요.
제일 쉬운 목표였던 폰 바꾸기. 연초에 일찌감치 해치웠고요. 이 아이폰16은 저와 10년 정도를 함께 할 예정입니다. 헬스장 가보기는 실패했지만 수영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된 거 아닐까요? 당당하게 우겨봅니다. 8월부터 시작한 아침수영을 돌아본 바, 저의 특기는 ‘출석’으로, 어찌 됐든 꼬박꼬박 출석해서 준비운동 열심히 하고 50분 수업 열심히 첨벙대면서 행복하게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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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는 어제(12월 31일) 썼으나 핫스팟 데이터를 다 써서 1일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레터... 올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 되세요.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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