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그러니까 8살이나 9살 쯤엔 자려고 누워서 이런 것들을 생각했어요: 원정아, 하고 부를 땐 ‘아’를 붙이는데 민지야, 하고 부를 땐 왜 ‘야’를 붙이지? 속으로 반 친구들의 이름을 전부 불러본 뒤 마지막 글자에 받침이 있으면 ‘아’를, 없으면 ‘야’를 붙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참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고 뿌듯함에 꿀잠을 잤지만 그게 다입니다. 한참 뒤엔 국어국문학과 부전공을 했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죠. 하지만 그래서 왜 아/야가 다른지 그 이유는 아직도 몰라요… 다음 날 밤엔 또 이런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은/는 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마지막 글자 받침에 따라 달라지는 건가? 이/가 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받침 때문인가? 수많은 낱말들을 머리속에서 줄 세우고 혼자 이상한 법칙들을 지어내다보면 잠도 잘 왔어요.
10살 때부턴 영어-더 정확하게는 알파벳 철자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제일 똑똑한 어린이였던 저는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알파벳을 처음 봤습니다. 다른 애들은 알파벳으로 써 있는 영어 단어도 척척 읽는데 나는 한 글자 한 글자를 쓸 줄도 모른다니? 뒤처진다는 생각보단 (니네가 할 줄 알면 나도 당연히 하게 되겠지^^) 지금까지 주위에 이렇게 많은 영어 단어들이 있었는데 이걸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깨달음 때문에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빨리 영어 단어 읽는 법을 배우고 싶었고… 같은 A인데 어디서는 ‘아’ 어디서는 ‘애’인 이유가 뭔지 너무 답답하면서도 조급했고… 그런 느낌들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당연히 저는 아직도 영어를 못하죠. 고등학교 때였나, ‘영.잘.원’ 이라는 이름의 다음 카페에 가입한 기억이 납니다. ‘영어 잘했으면 원이 없겠네’의 줄임말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10살 때의 조급함이라고 할까, 어떤 철자의 소리를 알고 싶다는 집착이라고 할까 그것들은 그 뒤로도 남았습니다. 고등학교 땐 누구보다 빨리 아랍어 철자를 외웠고 지금도 여행을 갈 때면 비행기에서 그 나라 철자와 발음을 열심히 외우죠. 그 시간에 기초 회화를 한 마디라도 익히는 게 여행에는 훨씬 도움이 될 텐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으니 이상한 집착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언어가 아니라 글자에 천착하는 어린이는 나중에 커서 이렇게 말의 뜻과 형식을 분리해버리는 사람이 됩니다… 한달 전인가? 좋아하는 말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몇 명이 답장을 보내주었어요. 저는 그중에서 ‘사랑’ ‘좋아’ ‘싫어’ 처럼 의미가 중요한 말들보단 ‘퓨마’ ‘밥’ ‘전철’처럼 일단 생긴 게 웃긴 말들에 더 끌렸고요. (특히 퓨마는 답해준 분도 왠지 웃겨서 좋아하는 거라고 했으니까 더 당당하게 웃을 수 있어) 아니 정말로,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음악이나 책,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좋아하는 말이 있기란 어렵습니다. 가장 예쁜 말은 월급이라지만 그건 그냥 돈이 좋은 거지 그 말 자체가 좋은 건 아니잖아요. 제가 좋아한다고 했던 ‘오늘 술 ㄱ?’라는 말도 그냥 술이 좋은 겁니다. ‘오늘 술 한 잔 하실래요?’ 랑 ‘오늘 술 ㄱ?’ 는 물론 다르지만 섭취하게 되는 알콜의 양은 대강 비슷하니까 넘어가요.
억지지만 이렇게 말의 뜻을 대충 생각해버리다가, 계속 형식과 껍데기만 좋아하다가는 남들 이야기에 공감 잘 못해주는 나쁜 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의 말뜻을 곱씹지 않고 그냥 넘긴다면 그리고 그 일이 거듭된다면요.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충 겉만 보고, 몇 번 입 속에서 굴려보고, 나한테 찰싹 붙는 어감이 아니면 금방 뱉고 다음 이야기를 입에 넣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면 어떨까요? 사실 이미 약간은 그럴지도 모릅니다. 진짜로 좋아하는 말이 있는 사람, 한 가지 이야기에 깊이 감동하는 사람, 남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저에게 영원한 미지고 신기한 인사예요. 물론 말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명확하게 좋아하는 게 있는 사람은 멋져요. 단단한 취향이란 건 언제나 고독의 증거이기 때문에. 하지만 어떤 ‘말’을 좋아하려면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어야/살아야 하는 걸까요? 알 길이 없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영원히 삶의 비밀 같은 거 모르고 죽겠죠.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깊은 맛 같은 건 알 길이 없을 테고요.
그렇다고 남들은 죽든 말든 나 혼자 잘먹고 잘살면 될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 강화하고 인류 사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꼭 진짜 마음 깊이 공감하지 않아도 이 정도 연대는 누구나 가능하잖아요. 음 그렇다면… 갑자기 생각났는데… ‘투쟁’이라는 말은 어떤가요? 같이 앞으로 나아가자는 뜻, 가장 아래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발짝 떼어보자는 뜻, 위태롭게 팔 벌리고 선 ‘투’를 ‘쟁’의 이응이 받쳐주고 있는 생김새, “투쟁”, 하고 나지막이 읊조려도 “투쟁!” 하고 소리쳐도 어울리는 발음, 저마다의 목소리로 외칠 때 가장 크게 앞으로 뻗는 소리까지 뭐 하나 빠짐없이 아주 마음에 드네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다음에 누가 “좋아하는 말이 있으세요?” 하고 묻는다면 ‘투쟁’이라고 대답하면 되겠네요.
가끔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때가 있잖아요. 물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지만(이거 누구죠? 헤겔? 칸트?) 저는 우선 형식을 갖춰두면 내용이 조금 더 쉽게 제 자리를 찾아올 때도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뻔하지만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의지를 잃지 말자고 다짐해봐요. 매번 같은 결론이라 좀 웃기네요. 별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