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자’. 뭔 20세기 깡패 등짝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을 법한 문구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저 문구를 문신으로 새긴 깡패 심정을 절절하게 이해한다. 매 순간 되새기지 않고서야 ‘착하게 살기’는 너무 어려운 미션이기 때문이다. 약 10년 전 한 친구가 문신으로 ‘못나게 굴지 말자’고 새기는 거 어떻냐고 말했었는데 그땐 웃어넘겼지만 지금 생각하니 10년 뒤 쯤에는 새겨봄직하다.
아무튼 착하게 살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우선 착하다는 게 뭔지, 이것부터 의견이 분분한 주제다. 내 주변 사람들, 가족, 친구들한테 잘해주는 게 착한 걸까?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내 집 앞 눈을 쓰는 게 착한 걸까? 이도 저도 됐고 그저 남들한테 피해 끼치지 않도록 내 앞가림이나 잘 하면 그것도 착한 게 될까? 사실 여기까지만 하기도 어렵다. 착하게 살기. 진짜 이마에 새길까 고민할 법하다.
그런데 요즘에는 다른 생각이 든다. 착하게 사는 게 진짜 좋은 일일까 하는. 착한 어린이, 착한 학생, 착한 장애인, 착한 페미니스트, 착한 정치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고 있는지. 다들 착하게만 살다가는 더 나은 세상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비열하고 치졸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정말 그러고 싶지는 않다. 5월 내내 날씨는 너무 좋았는데 웬 XXX놈 때문에 누가 나한테 침을 뱉은 것 같은 모욕감이 심해서 괴로웠다.
내가 아는 모욕감이란 그런 것이다. 누가 나에게 침을 뱉은 기분. 초등학교 때 바로 윗 학년에 얼굴만 아는 남자애가 있었다. 어느 날 수업시간 중 심부름을 가다가 텅 빈 복도에서 딱 마주쳤는데, 그 순간 걔가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퉤, 하고.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서 문을 잠그고 얼굴을 닦았다. 놀란 것도 놀란 거였지만 그 뒤에 무슨 일이 더 벌어질지 몰라서 무서웠다. 잘못한 건 상대방인데 내가 무서워해야 한다는 사실이 미치게 열받았다. 그때는 몰랐던 단어를 이제는 안다. 나는 그때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 뒤로 여러 번 그런 기분을 느끼며 살았다. 하지만 이렇게 꼭 집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게 하는 모욕감은 정말 오랜만에, 어제 TV 토론 영상을 보다 들었다. 놀랍도록 꼭 같다. 훤한 대낮 초등학교 복도에서 얼굴에 침을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듯이, 그래도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장면을, 그것도 공중파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화면을 보다가 폭력에 노출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내 얼굴에 침을 뱉은 애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선생님한테 일렀을까? 아무 말도 안 하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다. 말했어도 별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어제 수많은 사람들 얼굴에 침을 뱉은 자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모욕감은 평생 나를 따라올 것이다. 어린 시절의 그 기분이 마치 어제 일처럼 되살아났듯이. 정말로 원치 않는 일이다.
원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세상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아주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민을 적으려고 했다. 지금 어떤 곳에 후원을 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영업하고, 추천도 주고받고,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도 공유하려고 했는데 다 틀렸다. 남 욕만 해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이도 저도 다 용서하고 포용하고 넘어가주는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게 정말 좋은 일일까? 욕할 새끼는 욕을 하고 걸맞는 벌을 받게 하는 것이 착한 사람이 착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아닐까?
대학 시절 술 게임을 하다가 누군가 찐빠를 내면 우리는 구호를 외쳤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망친 놈 누구냐 오라(벌주)를 받으라, 라는 말 대신, 그냥 수리수리마수리 같은 주문처럼 아무 의미 없이. 하지만 수리수리마수리가 천수경을 여는 정구업진언이듯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에도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저걸 제대로 하지 않아서 지금 이런 사태까지 일어난 것이 아닐지… 그러니 이제라도. 이렇게 말하다 문득 깜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까지 긍정적이고 기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나? 다 포기해 우리 망했어 라는 말 대신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하자고 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