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어릴 때는 왠지 이것도 저것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잘 먹고 잘 살면서도 연대할 수 있다. 쿨하고 질척대지 않으면서 인생의 사랑을 지킬 수 있다. 워라밸을 지키면서 엄청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데, 그땐 노력하면 되는 건 줄 알았다. 진짜로.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고, 기만이고, 어중간함이고, 중도라는 이름의 회피라는 걸 이제 안다. 이도저도 아닌 가장 최악의 패배다. 세상에서 제일 멋이 없다.
언젠가부터는 이렇게 다짐하기 시작했다. 모든 선택을 미루거나 단지에 손이 끼인 채 주저앉아 울거나 난 둘 다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비겁한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차라리 손이 끼인 채로 바닥에 사탕 단지를 내리쳐서 산산조각 내고, 뒤도 안 돌아보고 뚜벅뚜벅 사라져야지.
알다시피 세상 모든 슬로건은 자기가 제일 못하는 걸 외친다. 제일 폐쇄적인 회사가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하자’고 한다. 거짓말이 습관인 놈들은 연애를 할 때마다 상대에게 ‘난 다 괜찮은데 거짓말만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누구보다 망설이고 고민하고 선택을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 이걸 들키기 싫어서 깨박살을 낸 사탕 단지가 대체 몇 개인가.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파라디 섬에서 태어났다면 결국 땅울림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아 아무것도 포기하기 싫다 모든 걸 없애버리자!
양자택일. 사람은 모든 걸 가질 수 없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 이걸 명심하지 않으면 될 일도 안 된다. 모든 걸 망치기 딱 좋다. 이 당연한 진리를, 머리로는 모두가 알고 있을 이 사실을 맞닥뜨릴 때마다 왜 이렇게 괴로울까.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다. 사람들이 이래서 종교를 믿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성인 군자들아! 여러분 정말 너무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지난 주 <어른 김장하>를 보고 성인 군자는 못 되어도 훌륭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자는… 반성과 다짐을 한 바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인간은 대부분 못났지만 못난 나를 직시하면 그래도 어찌저찌 조금만 못나게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그러느라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술도 먹고 엉엉 울었다가 싸우고 화해하고 남 욕도 하고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했다가 저렇게 살고 싶다 했다가 별 난리를 다 치지 않던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냥 이거였다. 우리 대부분은 별 거 아니니까 인생을 잘~ 들여다보고, 잘~ 생각해서 둘 중 하나를 골라잡고, 소중한 사탕을 행복하게 녹여 먹으면서 살자고. 그럼 사탕 단지에 손이 끼인 아이처럼, 바보 같이 주저앉아 우느라 인생의 대부분을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