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시리>라는 노래에 대해 생각한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라고 노래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이 노래의 ‘설운 님’이라는 대목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나를 서럽게 만드는 님이기도 하고 나를 버리고 가느라 서러운 님이기도 하다고.
나는 후자를 지지한다. 서러운 것은 버리고 가는 사람이다. 버려지고 남겨진 사람은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분하고 다시 슬프기는 할 테지만 딱히 서럽지는 않다. 서러워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너무 날카로운 감정들이 차고 넘치니까. 버리고 떠난 사람은 서럽고 후회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리 걸음을 질질 끌며 뒤를 돌아봐봤자 내가 버리고 떠난 사람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뭔가를 버렸다고 믿는 사람은 내가 버린 것이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나는 움직이고 상대는 멈추었을 거라고 믿지만 보통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걸 몰라서 내가 누구를 버릴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울었는데, 나만의 고약한 버릇인 줄 알았던 이 행태를 깔끔하게 설명하는 문장을 만났다.
“그러나 사람은 보통 뭘 잘해서 울지 않는다. 뭘 잘못해서 우는 것이다.”
(하은빈, <우는 나와 우는 우는: 장애와 사랑, 실패와 후회에 관한 끝말잇기>, 동녘, 2025.)
나는 이 책을 읽고 엉뚱하게도 내가 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감히 무언가를 버렸다고, 버릴 수 있다고 믿었던 자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가질 수 있는 감상들 중 가장 얄팍한 축에 속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이게 최악도 아니다. 어떤 안도감까지 들었다. <보편적인 노래>나 <Stupid Love Song> 같은 노래를 들을 때 드는 안도 비슷한 것. 내가 겪은 일,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그야말로 보편적인, 그리고 바보 같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노래들이다.
이왕 치사하고 얄팍해진 김에 더 이야기해본다. 내가 어떤 삶의 모습을 욕심낼 때, 의도치 않게 누군가는 거기에 상처를 받았다. 그렇다고 그걸 욕심냈다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둘 다 그냥 사실이다. 나는 이것을 원하고, 누구는 그 과정에서 상처 받는다는 것. 문제는 나에게 그 누구가 소중할 때 발생한다. (알다시피 내가 모르는, 알 바 아닌 사람에 대한 우리 대부분의 싸가지는 본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에 갔던 어떤 결혼식에는 신부의 할머니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오셨다. 그 모습을 보고 진짜로 심장에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의 이름은 ‘손녀사위 못줌’통… 우리 할머니가 뭐가 모자라서 저 할머님처럼 환한 미소를, 행복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단 말인가… 물론 이런 생각은 잠깐이고 보통은 할머니도 엄마도 세상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는 거라고, 자식만 기강 잡을 게 아니라 부모 기강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잠시의 고통도 고통이다.
나로 살고 싶은 마음과 ‘나 하나만 눈 딱 감으면’으로 시작되는 상상들은 늘 정반대 진영에 서 있다. 또 이런 순간들은 꼭 준비 신호도 없이 온다. 어느 날 갑자기 뒤통수를 꽝 갈긴다. 이럴 때마다 어깨가 앞으로 말린다. 아무튼 난 내 맘대로 살 건데. 주제는 이렇게 당찬데 형식은 굉장히 자신 없고 소극적으로 나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미래는 알 수 없고, 그래서 확신 있는 말은 그 자체로 사기꾼의 것이라고 주장해온 바(이 말조차 확신이면서), 정말 한치 앞도 모르겠는 소리를 하며 어깨를 펴고 당당할 수가 없다.
“우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떤 면에서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내내 의심하였다. 단지 죽지 않기 위해서, 태어나서 가져본 가장 귀한 것을 버려야 했다면…… 목숨보다 사랑한다고 여겼던 것을 내 손으로 내던져야 했다면…… 그렇게 해서 남은 것이 겨우 나 자신이라면…….” (같은 책)
그러니까 남은 것을 ‘겨우 나 자신’이라고 말해야 할지, 아무튼 나 자신이 제일 소중한 건 맞지 않느냐고 온 힘을 끌어올려 큰소리를 쳐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인생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내가 가진 것들을 막 내다버렸다. 앗 이건 너무 소중해서 버릴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드는 걸 제일 먼저 버렸다. 그게 나보다 중요해질까봐. 그러니까 겁쟁이치고는, 아니 겁쟁이이기 때문에 역으로 가장 용감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지금껏 한번도 인생의 위기를 겪어본 적이 없다. 여기서 인생의 위기란 냅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는 그런 거다.
이딴 식으로 살아온 인생이라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을 읽으면서 엄청 슬퍼할 수가 없었다. “나의 가장 귀한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게 대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니까. (그래서 <정말 없었는지>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너무 슬펐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잃어버렸다”는 문장하고 마주쳤을 때는 책 덮고 잠깐 엎드려서 울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혹은 자진해서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누구는 그 순간을 사랑으로 돌파하고 누구는 모른 척하고 누구는 차라리 더 초라해지겠다고 가진 걸 다 갖다버린다. 내가 이런 스타일이라서 잘 안다. 이것도 어려운 일이다. 빵점 받는 게 백점 받는 것만큼 어려운 그런 원리다. 아무튼 또 누구는 돌파도 모른 척도 실패해서 그냥 가만히 서 있는다.
돌파도 모른 척도 안 될 것 같은 순간에, 하지만 그냥 가만히 있기는 창피할 때 이 책을 권한다. 귀여운 사랑 이야기도 있고, 미치게 슬픈 이별 이야기도 있고, 빡치게 하는 차별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들을 읽는 사이에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던 순간을 까먹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도 눈물을 줄줄 흘릴 수 있는 핑계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주저 없이, 가진 걸 다 내다버리기를 선택했던 나 같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게 뭔지, 그러니까 그게 어떤 존재인지가 아니라 ‘인생’, 그리고 ‘소중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고민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면 언젠가는 ‘가시리 가시리잇고’ 하는 노래를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될 테고 <Stupid Love Song> 피쳐링이 크러쉬였다는 사실에 껄껄 웃게 될 테다.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