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분 매초 항시 주위를 살피’는 나는 최근 DP라는 별명을 얻었다. 드라마 <DP>에서 김성균이 정해인에게 “내 양말 무슨 색이야”라고 묻는데, 정해인은 거울에 비친 김성균의 발목을 보고 양말 색을 맞춘다. 그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방이 장난 삼아 “내 양말 무슨 색이야” 물었는데 난 그 양말이 회색 땡땡이라는 걸 맞출 수 있었다. 카페에 들어올 때 이미 봤기 때문이다. 김성균이 다른 걸 물어봤어도 나는 무난히 DP가 됐을 것이다. 내 뒤에 앉은 학생이 어떤 과목을 공부하고 있는지, 누가 뭘 입고 신었는지, 식당에서 우리가 앉은 테이블 번호가 뭔지,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본 적 없는 아저씨의 성격이 어떤지, 옆 옆에 앉은 젊은이들의 소개팅이 망했는지 흥했는지.
원래는 귀만 좋았는데 2년 전에 라섹을 한 뒤로는 눈까지 좋아졌다. 좋은 눈과 귀로 접하는 세상은 필요 이상으로 고해상도다. 김성균의 아무 질문에 다 답할 수 있다는 건 곧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피곤하고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고 버릇처럼 ‘개인 시간’을 요구했다. 그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지 않을 때 더 피곤하다고 믿었다.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까먹는 일, 뭔가를 흘리는 일, 지하철을 반대로 타는 일, 테이블 번호를 확인하러 왔다갔다 하는 일은… 가뜩이나 힘든 인생을 더 좆같이 만들지 않아?
DP의 활동 기간은 1년 6개월, 한때는 2년이었을 것이다. 나는 30년을 넘게 살았다. 수명이 다 된 것이다. 2년 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순두부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집에 와보니 낫또였다.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는 걸 보니 보일러 고장이 분명하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수도꼭지를 찬물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멍이 생겨 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탔다. 매우 지쳤거나 스트레스가 극심하거나 몸이 아팠을 때 벌어진 일들이지만, 그래도 이상했다.
나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가 짊어진 것들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몸을 가볍게 하고, 모든 잎을 떨구고, 웃자란 가지를 쳐낸 뒤 수월하게 인생을 통과하려고 했다. 그 방법은 얼마간 먹혔다. 어떤 드라마에 나온 “넌 꼭 힘들 때 나부터 버리더라?” 하는 대사를 뒤통수에 달고 다시 예전의 편안하고 예리하고 정돈된 삶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D를 비롯한 행복한 끼끼들이 내 주위를 맴돌며 왁킹을 한 사바리씩 추는 걸 볼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변해갔다. 인생 긴데, 저런 태도도 나쁘지 않을지 몰라. 무엇보다 내 주위에서 가장 맛있는 걸 많이 먹고 다니는 사람인 D가 불행할 리는 없다. 물론 내가 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도 D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한계가(’바닥이’ 라고 썼다가 미안한 마음에 고침) 있으니까. 아, 그 한계는 바닥에도 있고 천장에도 있다. D는 광주 출신으로 매번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병어조림이니 육전이니 하는 메뉴들로 나의 태생을 원망하게 한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번 생에는 가질 수 없을 맛수저.
전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삶을 통해 행복하고 바른 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D는 나에게 대충 살기를 전도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사소한 건 틀리고 빼먹고 실수해도 큰일 나지 않고, 결과만큼 과정에서 껄껄 웃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 꼭 그렇게 칼같이 모든 걸 정하고 잘라낼 필요 없다는 것. 편의점 커피를 흘리고 하얀 식탁보에 떡볶이 국물을 묻히고 복숭아를 깎다가 피를 보고(어째 다 먹는 얘기) 엉뚱한 버스를 타도 인생 별 일 생기지 않는다는 것. 아직도 밥 먹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일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있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잘못하면 응 죽여줄게 하고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지만 D는 “아이 왜 그래요~” 하면서 한번 더 기회를 주기를 권한다. 물론 다시는 기회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며 엉엉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것도 D에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닭똥 눈물이 장판을 뚫든 말든, 힘들 때 사람부터 버리는 사람보다는 힘들 때 사람부터 만나는 사람이 더 나은 인간이다.
처음 D를 봤을 때 속으로 하 이놈 멀리해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어떻든 D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인생에 비비고 들어왔다. 지금 우리 집 현관에는 D의 어머니가 그려주신 호랑이 민화가 있다. 악귀를 쫓아주는 그림이라는데 커다란 눈이 어딘지 귀엽고 맹하고 웃기고 결코 든든하지는 않아 보이는 것이 D를 닮았다. 어이없는 차이나카라 잠옷도 D가 이직 후 첫 월급으로 사준 효도 선물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 따라 3년을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나의 끼끼 D는 이렇게 나에게 관대함을 (강제로) 가르쳤다. 물론 매우 열받고 약오르는 방식이지만 확실히 배운 것들이 몇 가지 더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매일 비난한 그들의 힘 빼기가 나에게 정말 필요한 기술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차분~히 앉아서 침착~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다소 우끼끼 시끄럽더라도 별 생각 없이 사는 게 낫다는 것도. 무엇보다 D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건 건대 안주마을의 홍어삼합과 백합탕의 조화. 이건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라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