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이 쇼에는 오버스러움이 없습니다. 뛰어오르고 솟구치고 폭발하는 건 출연자들의 에너지뿐이고 억지 감동 억지 재미가 없어요. 어떤 감정도 연출의 힘을 빌려 과잉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출연자의 행동을 과대 해석하는 자막이나 시도때도 없는 모에화나 지겨움만 불러일으키는 과시도 없죠.
창작자라면, 특히나 이렇게 커다란 주방에 - 넷플릭스 자본력으로 3만 평 섬을 빌려 초대형 세트들을 지었다? - 고급 재료들을 - 천부적인 어그로력의 특전사,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신장 177cm 소방관, 유도 국대인데 이제 귀여운 얼굴을 곁들인... - 차려둔 걸 눈앞에 둔 창작자라면 누구든 기합과 욕심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이렌의 연출은 그 유혹을 이겨냅니다. 이 정도면 정말 사이렌의 유혹이라 할 만한데도 말이죠. 그래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멋짐이 극대화됩니다. 똑같이 멋있는 행동을 해도 있는 힘껏 생색을 내는 것보단 별 거 아니란 듯 쿨하게 지나가는 게 더 멋있잖아요. 물론 ‘아니 몇 번만 더 리플레이 해줘요ㅠㅠ’ ‘왜 슬로우 안 걸어줘요ㅠㅠㅠㅠ’ 하면서 놀란 적도 많지만... 아무튼 사이렌은 그렇게 쿨하게 멋집니다. 그나마 각 에피소드 제목으로 출연진들의 명대사를 넣었다는 게 제작진의 귀여운 자랑인 것 같아요. (우리 출연자들 이렇게 멋지다구!)
멋짐뿐만 아니라 감동을 연출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 이거 맛있네~ 낄낄대면서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주룩 흘린 장면이 세네 번 정도 나왔는데요. 그때마다 당황했던 건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게 돼서가 아니라 아무런 감동 연출 없이 훅, 너무 헌신적이고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장면이 투명하게 눈앞에 들이밀어져서였습니다. 생각해보면 현실 세계의 감동도 늘 그렇게 옵니다. 잔잔하게 흘러가다가도 문득 누군가의 최선과 진심이 반짝 빛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