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건 20대 초반, 정확히는 21살 때다. 보통은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엄마, 아빠 혹은 위인전에 나올 정도의 거물이나 드물게 정치인(김구 제발 그만), 유재석(?)이나 학창시절 은사님 등을 대던데 나는 존경하는 인물이 있었던 적이 없다. 그래도 누가 존경하는 사람 누구냐고 물어보면 김연아라고 하긴 하는데… 아무튼 존경하는 사람은 없어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21살 이후로 가끔 한다.
처음으로 되고 싶었던 사람은 ‘쿨한 사람’ 이다. 막 엄청나게 멋지자는 게 아니라 ‘치사한 사람이 되지 말자’에 더 가까웠다. 어떤 친구가 같이 이마에 ‘못나게 굴지 말자’라고 문신 새겨서 서로 볼 때마다 자극받자고 했었는데 정말 그럴까 고민했다. 그 친구는 결국 ‘chameleon’이라는 단어를 (이마가 아니라 팔뚝에) 새겼고 그건 땅 위의 사자라는 뜻이랬다. 친구와 아주 잘 어울리는 레터링을 보면서 땅 위의 사자라면 절대 치사한 짓은 안 하겠지 생각했다.
쿨한 사람이 되자고 생각한 건 그때 만난 언니가 아주 쿨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21살 때 들어간 동아리에서 만난 두 학번 위 선배였는데 그때까지 내가 봤던 선배들하고는 달랐다. 사실 이건 나한테 친언니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늘 동생이나 후배들하고 더 친했고 어울리기도 쉬웠다. 언니들은 왠지 대하기 어렵고 조심스러웠다. 살가운 성격도 아니라서 연장자가 예뻐하는(?) 성격이 뭔지도 몰랐다. 그러다 갑자기 가족보다 더 오래 얼굴을 보는 동아리에서 ‘언니’를 만나버린 거다!!!
이 언니가 왜 쿨해 보였는지, 구체적인 에피소드 같은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오 이거 멋진데? 했을 때 그냥 가지라고 줬거나 이런 걸까? 대세에 지장 없으면 패스하는 성격 때문이었을까? 매주 하던 기획 회의에서 뭔가 멋진 책도 추천해주고 멋진 말도 많이 했기 때문일까? 진짜 모르겠다.
내 동생을 비롯해서 모든 동생들은 아주 진절머리 나게 언니를 따라하는데, 나는 이 언니를 만난 뒤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냥 다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이기 때문에 따라하는 거였다. 옷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 몰라서(왜지?) 반팔 티 어디서 사냐고 물어본 적도 있고 여행을 가면 옷이랑 세면도구 다 꺼내서 정리해놓는 것도 이 언니한테 배운 거다. (물론 가르쳐준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따라함)
한번은 학교 앞 번화가에서 과 사람들끼리 술을 먹다가 뭔가 안 좋은 사건이 벌어졌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술집 밖 어두운 골목에서 평소에 싫어하던 남자 선배한테 손목을 잡혔고, 덜컥 무서워져서 막 울기 시작했는데 상대방도 횡설수설하면서 나를 안 놔주고, 울고 소리지르면서 집에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집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자꾸 무섭기만 하고 이 미친놈은 계속 안 떨어지는 대환장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이 근처에 Y 언니가 산다는 게 생각났다. 냅다 전화를 걸어서 살려달라며(?) 엉엉 울었다. 언니가 뭐라뭐라 말했는데 듣지도 않고 눈물 세 줄기씩 흘리면서 우니까 결국 그 새끼는 떨어져 나갔고, 나는 냉큼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갈 수 있었다.
사실 이 언니가 해준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때의 안도감만은 아직 기억난다. 근처에 그 언니가 있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 그때 난 누군가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나를 희생하고 깎아먹어가며 남한테 맞춰주는 게 아니라 내 앞가림 먼저 넉넉하게 하고 남도 챙겨줄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쿨하고, 치사하지 않은 사람.
그 뒤로 치사해지고 싶은 순간마다, 모른 척 눈 감고 싶어질 때마다, 나조차 챙기지 않고 얼마간 방치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쿨한 사람이 되자’고 되뇌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외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고 지친 스스로를 먹이고 입힐 수 있고 힘든 하루를 보낸 친구에게 커피를 사줄 수 있었다.
그 뒤로 십몇 년이 훌쩍 지나는 동안 Y 언니와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렇게 자주 보던 사이인데도 나름 적당한 거리감과 그로 인해 사라지지 않은 후광을 유지하며 지냈다. 동아리 사람들 사이에서 이 언니의 별명은 ‘해태’였는데, 맨날 약속을 째고 안 나와서 전설 속의 동물만큼이나 얼굴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 거리감과 환상은 2017년 워너원이 데뷔하기 전까지만 유지되었다. 워너원 데뷔 이후 우리는 말 그대로 세계를 누비며 아이돌 덕질을 함께 했고 27시간의 노숙도 불사했으며 안 가본 방송국과 연말 가요 시상식이 없다.
나에게 언니는 없지만, 많은 동생들이 그렇듯 나는 자라며 Y 언니의 못난 모습(약속 시간 2시인데 안 와서 전화해보니까 동생이 받아서 ‘언니 아직 자는데요’ 라고 하는 등)도 많이 봤고 웃긴 모습…은 아직 본 적 없을지도? 아무튼 여전히 Y 언니의 일부를 닮고 싶기도 하다.
내가 아는 최고의 오타쿠인 언니는 여전히 수많은 콘텐츠를 추천해주고 나는 이제 예전처럼 그 콘텐츠들을 다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니의 추천작이 나에게 1순위라는 건 변함없다. 또 나는 언젠가 꼭… 이 언니가 내가 3년째 추천하는 <상견니>를 보게 될 거라고 믿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예매해서 억지로 보게 한 것처럼 언젠가 꼭 감금이든 뭐든 무력이라도 동원해서 상견니 보게 할 것… 사실 오늘의 레터는 길고 긴 상견니 영업 겸 협박 글… 보고 있냐?
1인 가구로 사는 이상 좌우명은 곧 가훈이다. 아직 내 좌우명은 ‘쿨한 사람이 되자’이니 이건 곧 나로만 이루어진 가족의 가훈이기도 하다.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그러니까 살아가는 매 순간 저 말을 떠올린다. 힘이 닿는 데까지는 쿨한 사람이 되자고. 도움이 필요하고 한 걸음 더 다가가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치사하게 외면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