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학원 많이 다니셨나요? 저는 유독 예체능 계열 사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일타스캔들>의 치열쌤 같은 사람은 본 적 없어요) 어릴 땐 마냥 즐거웠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역시 그게 남는 거였다 싶어요. 어린 시절을 즐겁게 해주었고 지금도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니 최고의 가성비(?) 교육이 아니었을까요. 또 요즘은 모르겠지만 제가 초등학생일 무렵 급증한 맞벌이 가정과 방과 후 교실의 도움도 컸을 테고요. 오늘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중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저의 ‘예체능의 역사’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각자의 예체능의 역사를 떠올려보셔도 재밌을 것 같아요.
[날카로운 처키의 추억]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녔던 학원은 미술학원이었습니다. 네다섯 살때 동네 미술학원에 가서 초코파이랑 야쿠르트를 하나씩 받아 먹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어요. 집에서 엄마랑 하루 종일 노는 것도 (저는) 재밌었지만 (엄마가) 잠시 쉴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엄청난 걸 배우진 않았을 테고 학원 원장 선생님 딸이 저랑 동갑이라 같이 생일파티를 한 기억, 학원 선생님이 무서운 이야기를 해준 기억이 다입니다. 그 무서운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니 <사탄의 인형> 줄거리였어요.
대여섯 살 때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방이 잔뜩 있고 방마다 피아노가 있는 구조였는데요, 저는 단 한번도 동그라미에 가짜로 선을 그은 적 없었던 게 생각납니다. 이게 생각난다는 건 그때 선을 긋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다는 뜻이겠죠? 그 학원은 조금 다니다가 말았는데 당시 그런 구조의 학원이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는 뉴스가 나왔기 때문이었어요. 그때부터는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집으로 오셨는데, 그 선생님한테 13살 때까지 레슨을 받았으니 거의 7년을 함께 한 셈이네요. 전공할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는 모를 일…
[작전명 ‘하버드’]
모를 일이 하나 더 있는데요. 당시 일원동에서 잠실까지 버스를 타고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 쇼트트랙을 배우러 다닌 일입니다. 저랑 동갑인 김연아 선수가 당시 롯데월드에서 피겨 강습을 받았다던데, 행여 강습 시간이 겹쳤더라도 저는 김연아 선수를 한번도 못 봤을 거예요. 종목이 다르기도 했거니와 어린 저는 코치님이 시키는 말을 그대~로 듣는 어린이였기 때문입니다.
쇼트트랙은 영원히 허리를 굽히고 타야 하는 종목이라 코치님이 레슨 시간 내내 허리를 못 펴게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허리를 펴지 않았답니다… 나중에는 허리랑 다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는데 그냥 얼음판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허리를 안 폈답니다… 그동안 제 동생은 “에구 허리야!” 하면서 코치님 허리띠 잡고 슝슝 끌려다니고 있었고요. 진짜 대체 왜 그랬을까요? 정말 모를 일…
일원동에서 수서까지도 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거기서는 수영과 체조를 배웠어요. 아기 스포츠단 같은 거였겠죠. 엄마들은 수영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에서 애들을 지켜보고… 저는 또 미친듯이 수영을 했습니다. 월반에 월반을 거듭하며… 수영이 끝나면 바로 체조 강습을 받으러 강당으로 올라와 평균대 위에 섰습니다. 예닐곱 살에 평균대, 뜀틀, 온갖 구르기와 돌기를 마스터했었으나 지금은 평균대 위에 올려놓으면 울부짖는 일 밖에는 할 수 없겠죠.
저의 피아노에 대한 태도는 그냥 좋지도 싫지도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하라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체르니를 끝내고 쇼팽에 접어들었는데 그쯤 되니 엥? 내가 왜 여기까지 와 있는…? 하는 생각이 들었죠.
고등학교 때였나? 엄마한테 물어봤거든요. 그때 우리를 왜 그렇게 체육인으로 키우려 한 거냐고. 차라리 그 돈으로 그때 유행하던 영어 조기교육 같은 걸 시키지 그랬냐고. 엄마가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자기는 ‘전인 교육’에 꽂혔었다고, 저를 사립초-중-민사고에 보낸 뒤 하버드에 입학 시키려고 했었대요. 그때 엄마는 30대 초반이었는데 갑자기 애 둘을 낳고 집에만 있게 된 엄마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때 생긴 목표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생기를 줬을지 생각하면 참 귀여운 광기였다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때 행복했고 지금도 즐거우니 됐죠. 그리고 어릴 때 잔뜩 마셨던 파스퇴르 우유도 맛있었어요. (당시 파스퇴르 우유는 판매 수익의 일부를 민사고 장학금으로 활용했답니다. 미래에 내 아이가 갈 학교의 장학금에 보태기 위해 파스퇴르 우유만 먹은 엄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