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
평일에는 보통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일어난다. 12시 정도에 잠드니까 매일 8시간은 자는 셈이다. 주말에는 15시간 우습고 18시간을 잘 때도 있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건 잠이다. 자고 싶을 때 잠이 안 온 적도 없고 누우면 거의 바로 잠든다. 잠자리를 가리지도 않고 꿈도 잘 안 꾸고 뒤척이거나 중간에 깨는 경우도 드물다. 아무튼 요즘 같이 추운 날엔 잠이 깬 뒤에도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깐 핸드폰을 본다. 오늘의 업무 일정 확인, 날씨 체크, 가끔은 트위터를 켜서 실시간 트렌드 훑기. 밤 사이 수많은 트위터리안이 도파민을 뿜어낸 사건은 없었는가… 보통 그런 건 없다. 이때쯤 8시로 맞춰둔 알람이 울린다. 소리가 그냥 ‘삐삐삑’의 연속이라서 좋다. 다른 이야기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다이나믹듀오 'Ring my bell'이랑 서태지 'T'ik T'ak'으로 알람을 해놨어서 정말 고통스러웠지.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면 이때가 나 자신의 비위를 가장 잘 맞춰줘야 하는 시점이다. 자칫 수틀리면 다시 이불로 기어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침대 옆에 둔 물을 조금 마시고, 따뜻한 슬리퍼를 신고, 커튼을 걷어서 방과 거실을 밝게 하고, 보일러를 온수로 돌려 두고, 칫솔을 물고 나와서 이불 정리를 하거나 환기를 한다. 침대에 있는 커다란 공룡 모양 바디필로우는 꼭 베개를 베도록 해주고 얼굴을 살짝 이불 밖으로 빼놓는다. 사유: 자러 들어왔을 때 보면 귀여움. 씻고 나면 옷을 입고 집 정리를 조금 한다. 배가 고픈 날에는 사과나 토마토를 씻어서 잘라 통에 담거나 빵 같은 걸 챙긴다. 집에서 먹고 나가도 되지만 왠지 빨리 사무실로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여기까지 35분 정도가 걸린다.
마스크, 에어팟, 핸드폰, 애플워치, 묵주반지는 다 신발장 옆 선반에 놓여있다. 집 안에 전신거울이 없어서 집을 나설 때 화장실 거울에 잠깐 비치는 모습을 본다. 말린 지 얼마 안 돼서 붕 뜬 머리에 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 내가 지금 어딜 가는 거지? - 신발을 신는 사람이 보인다. 출근할 때는 가능하면 재활용, 일반, 음식물 쓰레기 중 하나를 들고 나가서 버리려고 한다. 그럼 왠지 아주 멋진 살림꾼이 된 기분이 든다.
[집 밖으로-출근]
집 앞 언덕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면서 그날의 컨디션을 안다. 발걸음이 무거운 날, 춥고 쨍한 날씨에 괜히 신나는 날, 아직 시작도 안 한 하루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날, 에너지가 넘쳐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 언제쯤 매일 비슷한 컨디션으로 출근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사무실까지는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지만 가끔 책을 읽는다. (아직 밀리의 서재 구독 안 하는 사람 없겠지요? 지금 시작하면 첫달 무료!) 에세이 딱 한 편을 읽을 수 있는 거리다. 소설을 읽을 때도 있는데 당연히 중간에 애매하게 끊기지만 뒷 내용이 너무 궁금하면 별 수 없다. 참고로 요즘 출근길에 읽는 건 김혜리, 이동진의 영화 평론집이다. 김혜리의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를 읽으면 그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지고 이동진의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를 보면 다음 장을 얼른 넘겨보고 싶어진다. 당연히 내 취향은 전자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깨끗하게 손을 씻는다. 이건 2014년 1월 2일 첫 출근을 한 날부터 꼭 지켰던 일과다. 겨울엔 따뜻한 물로 여름엔 시원하게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핸드크림을 바르면 출근이란 걸 해버렸지만 그래도 오늘을 신나게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현실을 믿을 수 없어서 억텐이라도 끌어올리고 싶은 거 아니냐? 라고 하면 그것도 맞다. 아무튼 손을 씻고 나서 커피를 내리고 9시쯤 일을 시작한다. 이때부턴 꽤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최대한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어떤 일을 실행하고, 또 누군가와 협력하거나 도울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효능감을 준다. 무엇보다 나는 이 ‘효능감’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서 사실은 일을 하는 시간이 꽤 소중하다. 확실히 공부보다는 일 체질이다. 성질이 급해서 그렇다. 점심도 먹고 수다도 떨고 회의도 하고 머리도 쥐어짜면(맷돌 굴려~) 8시가 넘는다. 대체로 7-8시 사이에 퇴근하는데 올해 9월 정도부터는 8시를 넘긴 적이 많다.
[다시 집으로-퇴근]
이상하게 퇴근해야지 생각하면 그때부터 배가 고파진다. 회사에서 점심으로 먹고 남긴 도시락을 챙기거나 샌드위치, 김밥 같은 걸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간단히 차려 먹을 때도 많다. 집에서 밥 냄새, 반찬 냄새가 나는 게 싫어서 밤이지만 아침 같은 메뉴를 먹는다. 호밀빵, 샐러드, 달걀, 당근라페(우리집 김장김치), 뜨거운 차 같은 거. 저녁을 먹으면서는 아이패드로 영상을 본다. 내 영상 재생 머신 아이패드 에어 1세대… 노인 공경 차원에서 영상 볼 때 말고는 안 쓴다. 저녁 먹으면서는 유튜브를 잘 안 보고 그때그때 추천 받은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최근에는 <웬즈데이>, <콩트가 시작된다>,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프랑스판)>를 기분에 따라 조금씩 돌아가며 보고 있고 영화는 <애놀라 홈즈 2>, <조조래빗>하고 <프란시스 하>를 다시 봤다.
밥을 먹고 나면 집안일을 조금 한다. 빨래를 하려고 결심한 날에는 집에 오자마자 세탁기를 돌려놓기 때문에 혼자 느릿느릿 거의 한 시간 동안 밥을 먹고 나면 딱 세탁이 끝난다. 이렇게 계획대로 시간을 썼을 때 쾌감이 있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노력은 고질적인데, 강박이 되지 않게 하려고 또 다른 방향으로 노력한다. 애초에 이렇게 태어났지만 균형을 잡는 건 언제나 중요하니까. 집 정리를 끝내고 리클라이너에 쏙 기어들어가면 하루를 잘 보냈다는 뿌듯함이 천천히 들어찬다. 충만함을 만끽하면서 책을 조금 읽는다. 요즘 집에서는 종이책을 읽는데, 편안하게 반쯤 누워서 책장을 넘기면 집중도 잘 되고 허리는 부서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행복하다. 거실에는 <타오르는 질문들>이 나와 있다. 선집이라서 침대 옆으로 옮기려고 생각 중이다. 대신 매번 완독에 실패하는 <0년>이랑 <배드 걸 굿 걸>을 다시 읽으려고 한다.
[자기 전-제일 좋아]
씻고 침실에 들어가면 한번 더 기분이 좋아진다. 우선 침실이 따로 있다는 게 엄청 성공한 기분이다. 아침에 잘 눕혀놓은 공룡이 빼꼼 쳐다보고 있고. 가끔은 룸 스프레이도 뿌리고 아니면 공기청정기를 틀어놓고 잠깐 또 책을 읽는다. 침대 옆에는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가 놓여있다. 자기 전에 읽기 딱 좋다. 읽고 있는 소설이 있으면 언제나 소설이 우선이기는 하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너무 궁금해… 제일 최근에 재미있게 본 소설은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작은 땅의 야수들>.
열 시나 열한 시쯤 독서등을 끄고 누우면 그때부터 한 시간 정도 트위터, 인스타, 유튜브를 돈다. 왠지 각 잡고 앉아서 또렷한 정신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는 싫은 마음이 늘 있다. 유튜브로는 영상이 예쁜 요리 채널이나 브이로그, 요즘 화제인 티비 프로그램 클립 같은 걸 보는데 열광적으로 새로운 채널을 찾지는 않는다. 친구들이 보내주는 링크만 따라가기도 바쁘다. 요즘 뭐가 유행인지 사람들이 어떤 드라마나 영화, 프로그램, 책을 좋아하는지 계속 체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언제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해왔으니까 이건 의무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심지어 적성에 맞고 즐거우니까 엄청난 행운이다.
하루에 커피를 한두 잔은 마시지만 또 밤이 되면 귀신같이 잠이 온다. 자기 전에 눈을 감고 이런저런 계획도 하고 공상도 하고 싶은데 자꾸 잠이 와… 주말에는 새벽까지 방탕하게 놀다가 잠들고 싶은데 1시를 넘기기가 힘이 든다… 다음날이 평일이면 다시 7시 반에 기상, 주말이면 오전 11시든 오후 3시든 눈이 떠질 때 일어난다.
[주말]
주말엔 나름대로 멋진 브런치를 해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주말 짱!!!!!!!!’을 (속으로만) 외치면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뭔가를 만들거나 청소를 하고 이런 레터도 쓴다. 지지난 주말엔 앞뒤 베란다 창에 단열 뽁뽁이도 다 붙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습기로 떨어지려고 해서 다시 붙여야 됨… 요가도 하고 (주로 이틀 내내 집 밖으로 안 나가지만) 정말 심심하면 도서관에 갈 때도 있다. 음악을 틀어놓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집은 늘 조용하다. 어쩌다 갑자기 너무 적막하다는 생각이 들면 음악을 틀고 싶지만 늘 떠오르는 게 없어서 쇼팽 발라드 같은 걸 틀고 그냥 적막을 채우게 둔다. 출퇴근 시간에는 지오디나 김현정 노래를 듣기 때문에 내 플레이리스트는 극단을 달리는 혼종이다…
또 어떤 주말엔 당근 라페를 잔뜩 만들고(우리 집 김장) 어떤 주말엔 대청소를 하고 어떤 때는 밖에 나가서 신나게 술을 마신다. 운동도 하고 집 뒷산-성미산-을 30분 동안 헉헉대며 넘어가서 빵을 사오기도 한다. 이때 애플워치 안 끼고 나가면 무효임. 주말 저녁에는 혼자 안주를 만들거나 뭔가를 시켜놓고 맥주나 와인을 마신다. 토요일 일요일을 합쳐서 배달 음식은 많아야 한 번 정도 시키는데 그게 이럴 때다. 주말에는 워낙 늦게 일어나서 밥을 한 끼만 먹어도 괜찮을 때가 많다. 그래서 굳이 더 무거운 메뉴는 안 먹으려고 한다. 평일엔 어쩔 수 없지만 주말에는 최대한 고기나 맵고 짜고 단 음식을 안 먹어볼 수 있으니까. 이래놓고 방금 꿀호떡이랑 그릭요거트 신나게 먹음. 아무튼 그러면서 와 오늘 완전히 술 콸콸 먹고 과음하고 방탕하게 놀아 제낄 거임! 결심하지만 결국 또 1시쯤 되면 눈이 감겨버려…
이런 일주일이 쌓이면 한 달이 되고 계절이 바뀌고 금세 일 년이 지난다. 그러면 나는 또 조금 다른 시간을 살고 다른 생각을 하고 그렇지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저마다에게 오직 한번뿐이고 단 하나뿐인 인생이 주어진다면 그걸 살아내는 것 역시 오직 한번뿐이고 단 하나뿐인 기회일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