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부정하고 보는 한국인이기 때문일까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저를 위한 영화였던 걸까요? 아 이 사람 진짜 싫다 → 웃겨 진짜 → 바보 같애 진짜 → ❤ 로 이어지는 K-드라마의 스토리라인을 체화했기 때문일까요? 인생은 예측불허이니 번복이란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간이 아닐까요? (또 핑계대죠?) 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그땐 아니었는데 지금은 좋은 걸요.
최근 혼자 어이없었던 순간이 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길을 걷는데 갑자기 클래지콰이가 너무 땡기더라고요. 그게 뭐 어때서? 라고 생각하셨겠죠. 하지만 저는 아주 오랫동안 뿅뿅음악, 그러니까 전자음악을 욕하고. 천대하고. 비난해왔습니다. 음악이란 말이야~ 로 시작되는 꼰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친구들한테 흥선대원군이냐는 욕도 많이 먹었고요. 그때 주장했던 건 대충 ‘인간의 성대! 악기의 현! 타악기의 가죽을 울려서! 소리를 내야지 말이야~’ 하는 개소리였는데 솔직히 그때도 바보 같다는 건 알았습니다. 그런 바보스러움까지 감수하면서 뿅뿅음악을 욕하고 싶었던 게 솔찍헌 심정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더운 날씨 땡볕 아래서 별안간. 뿅뿅음악이 너무 듣고 싶어지더라고요. 친구들아 너희가 맞았어. 그거 진짜 좋더라. 이렇게 혼자만의 고집과 취향을 번복하는 머쓱함을 잠시 참아내고 나서 클래지콰이 앨범을 실컷 들었습니다. 나 요새는 스크릴렉스 듣는다. 이러다 언젠가는 보사노바도 좋다고 듣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외치고 싶지만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이쯤 되니 앞으로는 번복 안 하는 멋진 어른이 되겠다는 말이 안 나옵니다. 머쓱하지만 누구보다 빠른 인정을 특기 삼아 하루에도 열두번씩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는 게 낫겠어요. 말도 안 되는 크고 작은 번복을 겪을 때마다 미묘한 기분이 됩니다. 어제까지의, 혹은 바로 전 순간까지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 맞는 건가? 물론 맞죠. 지난 순간의 저와 지금의 저 둘 다 성격이 좋진 않으니 이쯤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훨씬 발전적인 일이라는 것도 압니다. 또 지금은 천년의 ‘베프’일 거라고 믿었던 친구가 그저 그런 동급생 중 한 명이 되곤 했던 초등학교 시절보다 긍정적인 상황입니다. 싫던 게 좋아질 뿐 좋던 게 싫어지는 일은 잘 없으니까요. (이런 거 또 확신하면 번복하게 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뭔가를 확신하지 않고 눙치게 되는 걸까요? 나이를 먹으면 삶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로 많은 질문에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특히 뿅뿅음악과 반대되는 의미로 아주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나.다.라. 차례로 잘 정리되어 있고 나중에 생각해도 기분 좋은 그런 여러 가지 많은 답들이 내 안에 가득 차 넘치면 너무 좋겠네 좋겠네 / 언제든지 바로 꺼내어 볼 수 있고 낮에도 밤에도 이해가 잘 되는 그런 답들이 가득 차 넘쳤으면” (강산에, <답>)
번복은 조금 창피하지만 느리게,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 많은 답들”을 정리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무턱대고 툭 내뱉은, 답이라고 믿었던 말들이 그냥 개소리였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괴로운 과정을 거쳐 그나마 답에 가까운 무언가를 얻게 되는 일.
언젠가는 친구들 앞에서 “거짓말쟁이 입장~~~~”을 외치듯 나 자신과도 더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길. 그러려면 한참 더 용기를 내고 몇 번은 더 부끄러운 번복을 거쳐야겠죠. 하지만 그런 날이 꼭 오기는 올 것 같습니다. 이 말도 나중에 번복하게 될까요? 일단 지금은 그런 확신이 드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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