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중도 터널을 지나다가 당시 과 조교 언니를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 언니는 커다란 봉투를 안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안에서 오렌지 하나를 꺼내 쥐어줬어요. 너무 반가운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고 꺼낸 오렌지라는 걸 우리 둘 다 알았습니다. 큼지막한 미소, 주고받는 인사로는 표현되지 않는 반가움을 오렌지의 형태로 한 손에 덥석 쥐어준 거였죠. 그때 제가 왜 중도 터널을 지나고 있었는지,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자보를 붙이거나 뭔가를 취재하겠다고 사진 찍으러 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 뒤로 오렌지를 볼 때면 그 반가운 표정과 100퍼센트의 호의가 떠오릅니다.
저는 그때 받은 호의의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주머니에 식권을 대여섯 개씩 넣고 다녔습니다. 자기들끼리 잘그락대는 플라스틱 식권을 가지고 다니다가, 캠퍼스 곳곳에서 좋아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불쑥 꺼내줬어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줬습니다. 주로 밥 잘 안 챙겨먹고 다니는 것 같은 자취생들에게요. ‘어 안녕, 오늘 학A 가츠동이야. 밥 먹고 다녀라.’ 학생회관하고 먼 곳에서 마주쳤는데 주머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식권을 보면 다들 당황하다가 곧 까르르 웃었던 것 같아요. 그 갑작스럽고 반가운 웃음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당시 아르바이트니 과외를 엄청 했는데 그렇게 번 돈은 다 술값하고 (남의) 밥값으로 줄줄 나갔네요^^…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사무실 파티션 너머로 불쑥 초가을 귤을 건내준 선배가 있었습니다. “올해 첫 귤의 추억은 제가 가져갑니다”, 하는 말과 함께였어요. 그 귤의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연두색이 약간 남아있던 귤 껍질과 그 말은 아직도 기억해요. 중도 터널의 오렌지는 너무 즉각적이고 아무 말도 없어서 의미 있었고 초가을의 귤은 저 말 때문에 추억이 돼버렸습니다. 역시 모든 의미 부여는 주관적이어서 느끼하고 아름다운 것 같아요.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글을 다 쓴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문장의 모든 쉼표를 삭제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내쉬었던 숨, 들이마셨던 감정을 다 지운다는 생각으로 꼼꼼하게. 모든 의미 부여가 너무 싫었던 시절인데 지금 이렇게 추억팔이 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과거의 제가 저를 개 쎄게 때리고 싶어했겠죠. 저는 지금까지도 누군가에게 불쑥, 작은 뭔가를 주는 걸 좋아합니다. 카카오 선물하기가 생긴 뒤로는 주머니에서 꺼내주기보다 재미가 덜해졌지만요. 제가 이걸 좋아하게 된 건 다 그 언니들 때문입니다.
언니들 보다는 오빠들하고 훨씬 친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때는 언니들의 차분함이 밍밍하게 느껴졌어요. 나보다 겨우 몇 살 많은 것뿐이면서 세상 다 산 것처럼 조언해주는 게 같잖다고도 생각했고요. 반면 남자 선배들은 몇 살이 많든 저랑 똑같이 헛소리나 농담만 하면서 놀 수 있어서 편했습니다. 언니들은 자극적인 재미가 없어서 심심했고, 그래서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건 진짜였을 수 있지만) 또 그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하는 게 너무 멋없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래놓고 진짜 다른 사람이 필요한 때가 오면 꼭 언니들 집에 기어들어가서 엉엉 울었습니다다. 진짜 노답 중의 노답이죠. 언니들은 제가 달라는 대로 술을 꺼내줬고, 꼭 안주도 챙겨줬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하면 그냥 등을 토닥여줬습니다. 장판에 구멍 안 났나 몰라요. 그리고 다음날 머쓱한 표정으로 히히 웃으면서 눈치를 보면 그냥 같이 웃으면서 쌀국수를 사줬죠.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그 언니들이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이라면 저도 누군가에게 언니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가 울면 달래주기커녕 운다고 놀리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챙겨줄 안주라고는 냉장고에서 시들대는 과일이나 언제 샀는지도 모를 크래커가 끝이고, 우리집에서 자고 가려면 슈퍼싱글 침대에 두 명이 구겨질 수밖에 없지만(침낭이 있긴 한데). 사실 이 모든 물리적 조건은 그때의 언니들보다 훨씬 낫지만 저의 마음이 아직도 너무 조그만 것 같아요. 그래도 저의 어린 친구들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언니들 중 한 명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요?
살다보면 가끔은 엄마한테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 못할 일들이 벌어집니다. 너무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들키기 싫은 일들이 우리를 덮칩니다. 애인의 위로는 피상적이고 친구의 충고는 좆같이 느껴지는 날이 올 때, 그럴 때 누구에게나 언니가 필요해요. 조금 딴소리지만 ‘멋있으면 다 언니’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안의 꼰대가 꿈틀대며 그걸 용납하지 않아요. 언니는 언니다… 언니는 언니여야 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야 해…
제가 좋아하는 언니들하고 좋아하는 마음만큼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얼마간 데면데면한 사이인 것도 같아요.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고 인생이 막막할 때 가장 먼저 그 언니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물론 매우 일방적인 떠올림이고 그들에게는 허락 받은 적이 없죠. 본인도 모르는 출연 죄송합니다. 그 언니들은 온 관계에 걸쳐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생각하면 국밥 한 그릇 먹은 듯이 마음이 든든하고 뜨뜻해지죠. (저한테 ‘국밥’은 엄청난 칭찬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길) 누군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먼저 저렇게 살고 있다는 걸 보면 그만한 위로가 없습니다.
언젠가부터 인생에 언니가 등장하면 무조건 꽉 붙잡고 봅니다. 그동안 제가 놓친 언니들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제가 누군가의 언니가 될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습니다. 아직 자신은 없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이 또한 연습만이 살길 아니겠나 싶어요. 지금은 연습이 덜 되어서 누군가 저를 ‘언니’라고 부르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주먹을 꽉 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됩니다. 저의 어린 친구가 원하는 도움을 주기 위해, 그게 세상이든 사람이든 일단 욕을 해주고 패버리기 위해. 제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길 빌며 무슨 일이냐고 묻죠.
실제로 저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요. 다들 저를 보고 남동생 있을 것 같다고 하는 걸 보면 한 살 어린 여동생의 존재는 딱히 ‘언니 연습’에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합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고 만날 사람이 많고 그중에는 저를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도 제가 언니라고 부를 사람도 많을 테니 연습은 차고 넘치게 할 수 있겠죠. 미래의 어느날 만날 언니들을 미리 떠올려봅니다. 마음이 든든하고 뜨뜻해지는 걸 보니 내일 점심은 국밥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