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링 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없는데(?) 인생을 늘 빡빡하게 운용했다는 면에서 평생 저글링을 해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런 멋진 재주보다는 입으로 하모니카를 불면서 발로 등에 진 큰 북을 치는 그런 장터 유랑단에 가깝겠죠. 하는 사람은 신나지만 보는 사람은 어딘지 ‘?’ 하게 되는 그런 모습이요.
어쩌다 맞이하는 여유로운 주말에는 침대에 누워서 30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머리로는 여러 저글링을 아니 여러 악기를 연주하느라 속이 시끄럽습니다. 몸은 누워 있어도 멍때리는 건 못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갑자기 너무 피곤합니다. 인생에는 중요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어느 순간 그 중요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철은 <싫다 싫어>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싫다 싫어 꿈도 사랑도 싫다 싫어 생각을 말자…” 인생에 꿈과 사랑만 있다면 저는 기쁘게 일어나서 힘차게 북을 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냥 인생이 너무 복잡하고, 내가 컨트롤하고 / 즐기고 / 해내야 하고 /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들은 너무 많고 다양합니다. 이건 조금쯤 강박일까요? 최근에는 집중력을 잃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일을 할 때 집중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이건 10년 전부터 앓는 고질병) 저의 삶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대강 큰 줄기가 있고 그 주위에 작은 가지들이 자라나야 내 줄기가 이거구나 하고 살 텐데, 어느새 너무 많은 가지들이 너무 많이 자라서 원래 줄기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 인생의 정체가 뭐였는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까먹을 수도 있는 위기입니다. 지금이라도 깨달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삶을 단순하게 재정비해보려고요. 뭐부터 해야 할까요? 물건도 (더) 줄이고, 뭐가 있는지도 몰랐던 각종 구독도 해지하고 - 딴 얘긴데 한동안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을 안 해서 맨날 1분 미리듣기 듣고 다녔거든요 ‘아 이 정도면 후크송^^ 즐기기엔 충분하지’ 이러면서… 한 달 정도 고통받고 나서 음악 스트리밍은 평생 구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 일상을 더 루틴하게 하고, 책 읽고 운동하고 글 쓰고(니가 뭔데? 라고 물으신다면 그냥 지나감) 일하고 잠자는 데 집중해볼 예정입니다.
그럼 나중에 새로운 가지가 더 자라나더라도 그땐 큰 줄기가 어디였는지 까먹지 않겠죠. 자극적이지 않고 단순하고 심심한 삶이라고 해서 꼭 얄팍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이야기들에는 비슷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그 인물들은 지루할 만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그걸 고귀하다거나 우아하다는 말로 꾸며 부르지만, 사실 그들은 그냥 눈 앞에 있는 큰 북 하나만 계속해서 치는 중일지도 모르죠. 아무래도 평생 드럼을 배우긴 틀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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